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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2) 서울 관악갑 한나라당 김성식 위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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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려울 때 당에서 경제를 총괄하는 제2정조위원장을 맡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저의 지역구인 서울 관악갑만 해도 서민들이 많이 사는 곳인데, 요즘 시민들 표정이 많이 어두워요. 서민과 중산층의 부담을 덜고 경제를 살리는 데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한나라당에 최병렬 체제가 출범하며 제2정책조정위원장에 전격 발탁된 김성식 위원장(45·서울 관악갑 지구당 위원장)은 경제통이다. 2정조위원장은 과거 쟁쟁한 현역 의원들이 맡았던 요직.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개혁총장’으로 통하는 정운찬 서울대 교수의 애제자인 그는 ‘나라정책연구원’정책기획실장, 21세기 국가경영연구회 정책기획실장 등을 거쳤다. 닉네임이 ‘21세기 경제통’이다.

지난 7월 그는 당초 정부와 민주당이 반대했던 세금 감면을 관철해 봉급생활자들에게 1조1천억의 소득세를 돌려주었다. 지난 9월 그가 내놓은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 개인 자산관리공사 설립, 신용회복지원위원회 강화 등의 정책 아이디어는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야당의 정책이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 방안은 최병렬 대표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매월 130개의 기업이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있고, 실업률도 높아만 갑니다. 서민경제가 붕괴돼 가고 있어요. 거기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도 불안합니다. 노무현 정부는 경제와 한반도 안정이라는 두 어젠다에 집중해야 합니다. 기성체제를 변화시키려는 의지는 높이 평가하지만 좌충우돌식 국정운영은 국민의 불신과 갈등을 증폭시킬 뿐입니다.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경제현장을 찾아다니고 전문가를 만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경제를 챙기라는 거예요. 그러면 서민들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시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을 가질 겁니다. 노 대통령의 2만 달러 슬로건은 광고 카피일 뿐이예요. 그 내용을 채우는 것이야말로 정부와 여당의 몫이죠. ”

김 위원장은 자칭 ‘서민의 아들’이다. 유년 시절 그의 아버지는 트럭을 몰았다. 어머니는 시장 한 귀퉁이에 좌판을 벌여 놓고 옷을 팔았다.

“어머니는 유독 비를 싫어하셨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하루 장사를 접어야 했으니까요. 학교 끝나고 나면 어머니의 좌판 옆에 쪼그리고 앉아 예습·복습하는 게 당시 저의 일과였죠.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신 어머니 덕에 쌀은 없어도 책은 많았습니다.”

소처럼 일만 했던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엄했다.

“하루는 어렵사리 돈을 타내 책을 사러 갔다가 도중에 돈을 잃어버렸습니다. 난감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책을 샀다고 거짓말을 했죠. 대노하신 어머니는 저를 홀딱 벗겨 집밖으로 내쫓았습니다. 돈을 잃어버렸으면 잃어버렸다고 해야지 왜 거짓말하느냐는 거였죠. 지나가던 같은 반 여자 아이들이 알몸인 절 보고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그 날의 수치심이 평생 교훈이 됐죠.”

그는 영화 ‘친구’의 배경이 된 부산고를 나왔다. 1977년 대학에 진학하며 상경한 그는 밤이면 관악의 달동네에서 야학교사로 일했다. 이듬해 유신철폐를 외치다 구속됐다.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땐 수배자 신세가 됐다. 군에서는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 말로 다 할 수 없는 일을 겪었다. 전두환 정권 말기였던 86년 구속되면서 헤어진 생후 6개월 된 딸과는 2년이 지나서야 다시 볼 수 있었다.

김 위원장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 경제평론가·시민운동가·방송 진행자의 길을 걸었다. 정치판에 뛰어든 뒤로는 낡은 정치 청산을 위해 노력해 온 한나라당의 젊은 정치개혁 그룹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의 구심점이었다. 1996년엔 정치학자와 정치부 기자 100인이 뽑은 ‘신세대 정치지도자 10인’에 선정됐다.

그의 또 다른 별명은 ‘순애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서클에서 처음 만나 11년만에 결혼한 그에게 친구들이 붙여준 훈장같은 별명이다. 그는 서민에 대한 ‘순애보 정치’를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관악의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지금 성북구에 있는 서울사대부고를 관악으로 이전하기 위해 뛰고 있는데, 계획이 확정됐습니다. 특목고도 추가로 유치할 예정이죠.”

김 위원장은 지난 16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돈 안드는 선거를 하겠다고 통·반 연락책을 따로 두지 않았고, 자원봉사자들을 활용하는 한편 사이버 유세에 주력했지만 정치권의 벽은 높았다.

“등원하면 경제전문가로 일하고 싶습니다. 서민생활 안정, 경제 살리기에 일조하고 동북아 시대 선진국으로의 도약에 온 힘을 쏟을 생각입니다. 북한의 노동력과 남한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남과 북이 상생하는 경제공동체를 만들면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우뚝 설 수 있습니다.”

주진 월간중앙 정치개혁포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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