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2004년 6월 주권이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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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미 이라크 군정이 내년 6월까지 이라크 과도정부에 주권을 이양하기로 결정했다. 내년 5월까지 지역과 종교.부족을 망라해 과도의회와 과도내각을 구성해 미 군정으로부터 통치권을 인수한다는 것이다.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과도통치위 의장은 15일 기자회견에서 "폴 브레머 미국 이라크 최고행정관과 이 같은 주권이양 계획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라크의 저항운동이 게릴라전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당초 계획을 수정해 헌법 제정과 정식 정부 출범 이전이라도 통치권을 이른 시일 안에 이라크인에게 넘기기로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5단계 시간표 확정=합의안에 따르면 과도통치위는 첫 단계로 내년 2월까지 입법.사법.행정의 3권분립과 민간에 대한 군통제 원칙, 이슬람의 정체성 등을 담은 이라크 기본법을 제정한다.

5월에는 이라크 18개 주(州)의 종교.사회.부족 지도자들을 망라하는 과도의회가 구성되며 여기서 과도정부 각료들이 선출된다.

과도정부는 치안유지를 포함해 모든 주권을 행사하며 헌법 제정과 총선거도 과도정부 책임 아래 치러진다. 미국과 과도통치위는 과도정부 출범 이후 미군이 이라크에 계속 주둔할지에 대한 합의를 내년 3월까지 도출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대통령은 "이 합의는 민주적이고 다원화된 이라크의 비전을 실현하는 중요한 조치이며 새로운 시간표가 정치적 현실이 되도록 과도통치위와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 오키나와를 방문 중인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16일 "현지 주둔 미군과 연합군 운용계획은 주권이양과 아무 관계가 없다"며 "주권이양 이후에도 미군이 이라크에 계속 주둔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부시의 거대한 도박"=주권이양 합의가 현재 이라크 상황에서 어떤 방향으로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이번 합의는 파병을 약속한 나라들의 파병 규모와 시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는 "부시 행정부가 거대한 도박을 벌이고 있다"고 16일 지적했다.

당초 이라크의 조기 주권이양에 부정적이었던 폴 브레머 이라크 행정관이나 부시 행정부가 방향을 선회한 것은 내년 대선과 점증하는 테러에 떠밀린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최악의 경우 과도정부가 '미군 철수'를 요구하면 미군의 지위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주권이 이양되면 반군들이 테러공격을 줄일 것이라는 기대도 시기상조다. 통치권을 상실한 미국의 약점을 겨냥, 테러를 강화할 수도 있고, 반대로 합법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선거에 참여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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