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내통 현장'이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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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 선거캠프의 핵심이었던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은 "당시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주장했던 '후단협' 소속 의원들의 후보 교체 움직임과 김민석 의원의 탈당, 일부 의원의 한나라당행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2002년 2월 말 당내 경선 후보 등록을 한 뒤 3월 광주 경선에서 1위를 하며 지지율이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4월 말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면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은 60%에 달했다.

그러나 정권 비리가 잇따라 터지며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이후 지지율은 10%대로 곤두박질쳤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내에선 정균환 의원 등이 중심이 돼 '후단협'이 꾸려졌고, 이들은 후보 교체까지 주장했다.

이때 386의 대표주자이던 김민석 의원이 탈당해 정 후보 측으로 몸을 옮겼다. 인터넷엔 노 후보 동정론과 김 의원 비판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김 의원이 탈당한 10월 17일 하루에만 노 후보 캠프에 후원금 5억여원이 답지했다. 이후 노 후보의 지지율도 조금씩 올라갔다.

정 후보와의 단일화가 결정된 11월엔 각종 여론조사에서 두 사람의 지지율 차이가 2%포인트 내외였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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