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건 골재뿐만 아니다(신도시 이것이 문제다: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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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마무리재」파동 예고/도기 40만개·판유리 2백만 상자 차질/정부선 “수입하면 그만” 느긋
신도시에서 아파트를 짓고 있는 주택건설업체들은 당초 땅짚고 헤엄치기식으로 쉽게 생각하고 뛰어들었다.
기존주택을 헐어내고 짓는 재개발사업등에서 흔히 나타나는 보상·철거시비가 없다. 도시계획·건축법 등 까다로운 규정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큰 길에 연결되는 아파트 진입로를 따로 내지 않아도 된다….
정부(토개공)가 이미 수용해 바둑판처럼 닦아놓은 땅에 건물만 죽죽 올린 후 높은 경쟁률속에 착착 분양이 진행되며,정부는 선수금을 주고 아파트를 사두는 주택상환 사채발행까지 허용해 주었다.
그런데 막상 공사를 시작해보니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 어느 공사보다도 열악한 조건에서 싸워야 했다. 자재와 인력부족이 워낙 심각했기 대문이다.
정부는 입버릇처럼 「큰 문제는 없다」「곧 해결된다」고 해왔지만,시멘트·골재 등 기본자재 부족은 오늘의 「부실신도시」사태를 몰고 왔다.
그러나 또다시 한바탕 신도시는 물론 전체 건설시장에 몰아닥칠 돌개바람이 있다. 바로 욕조·위생도기(변기)·타일·판유리·벽지·조명기구와 같이 실제 생활의 편리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마감재·장식재 등의 부족사태다.
오는 9월 입주예정인 분당신도시 시범단지를 비롯,각 업체 현장소장들이 벌써부터 한결같이 긴장하며 우려하는 부분이다.
89,90년에 분양된 신도시아파트는 올 하반기부터 마무리공사에 들어간다. 따라서 마감재·장식재 수요가 갑자기 늘어날 것이며 이 분야의 전문인력 또한 많이 필요하게 된다.
『레미콘·철근을 주된 자재로 쓰면서 이뤄지는 골조공사는 장비가 많이 투입되며 상대적으로 현장인력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무리공사는 막일꾼을 쓸 수도 없어 일일이 해당분야의 전문기능공이 해야 하기 때문에 원래 부족한 건설기능인력난이 극에 달할 것입니다.』
현장소장들은 정부가 이같은 점을 고려,전체적인 분양·착공일정을 늦추고 자재·인력수급계획을 조정하지 않으면 또한차례의 부실파동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마감·장식재는 그 종류와 품질이 다양하다. 또 이에 대한 마무리시공은 당장 눈에 보이고 생활불편으로 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부입장은 자못 태평하다. 수급에 큰 문제는 없으며,문제가 다소 있더라도 국내업체의 생산을 늘리고 부족한 양은 수입하면 된다는 식이다.
상공부는 우선 올해 마감재중 위생도기 40만개,판유리 2백만상자,타일 2백만평 정도가 부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업계는 이같은 예측이 실제 현장형편보다 훨씬 적게 계산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품목상으로도 욕조·알루미늄 새시·벽지 등 거의 모든 마감·장식재에 걸쳐 공급부족이 우려된다고 한다. 부족물량 또한 위생도기가 70만개,타일도 3백만평 이상으로 상공부 추산치보다 훨씬 많다.
따라서 부족사태가 커질 하반기부터는 품목에 따라 값도 뛸 것이며,품귀사태가 빚어지리란 예상이다.<표 참조>
업계는 정부의 부족물량 보충방안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우선 마감·장식재 생산업체들이 생산시설 확충을 꺼리고 있다. 생산업체들은 신도시 특수가 기껏해야 4∼5년 정도의 일시적 수요라서 자칫 생산설비를 늘렸다간 나중에 과잉생산으로 손해볼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수입문제 또한 정부의 생각처럼 쉽지 않으리란 전망이다.
품목이 워낙 다양해 여러지역에서 동시수입이 가능할 것인가가 우선 불투명하고 수입품의 질 또한 보장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국내 건자재는 KS(한국공업표준) 규격에 의해 품질이 관리되고 있지만 수입품의 경우 품질검사 의무규정이 없어 국내공급 부족을 틈타 저질품이 그대로 사용돼 부실화될 가능성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
다시 말해 저질 중국산 시멘트파동과 유사한 경우가 여러 품목에서 동시에 발생해 신도시가 「부실의 땜질」로 변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건설업체들은 마감·내장재의 경우 통상 모델하우스 공개와 함께 생산업체에 대해 대량주문을 낸다. 1년 정도의 준비기간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마감·내장재 생산업체들은 이미 주문적체에 시달리고 있다.
「또 한차례의 자재파동은 뻔하다」는게 한 타일생산 회사관계자의 진단이다.
이에 따라 신도시 건설업체들은 벌서부터 물량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이번 골재파동에서 문제없을 것이라는 정부의 말만 믿고 따르다가 더 큰 고통을 맛본 중소업체들이 물량확보에 훨씬 적극적이다. 이에 따라 일부 가수요현상마저 우려되고 있다.<양재찬·민병관·이철호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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