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주머니 가벼워진 뮤비… 아이디어로 튀어 볼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8면

앨범 제작비의 몇 배를 잡아먹는 기형적인 대작이 범람하면서 '대중가요를 망친다'는 소리까지 들었던 뮤직비디오. 지난 몇년간 무조건 큰 돈만 들이면 된다는 안이한 제작방식을 답습하던 뮤직비디오가 일대 변신 중이다. 음반시장의 불황 때문이다. 많게는 한편에 7억원까지 부풀려졌던 제작비가 요즘은 웬만하면 1억원을 넘는 경우가 드물 정도다.

궁하면 통한다고, 영화를 방불케하던 대작 뮤직비디오가 눈에 띄게 준 반면 그 공백을 통통 튀는 아이디어로 채운 작품이 많아졌다. 화려한 출연진과 해외 로케 촬영 등 거품은 빠졌지만 첨단 촬영기법과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실험적 작품은 줄지 않아, 음악팬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주고 있다.


첨단 촬영기법을 도입해 화제를 모은 이정의 뮤직 비디오'다신'.

◇거품 빼고 알뜰하게=조성모의 '투헤븐'(1997) 이래로, '스타를 기용한 초호화 캐스팅에 해외 올 로케 촬영'이라는 공식이 판을 쳤다. 결과적으로 수억원의 제작비를 들이면서도 정작 노래는 화면의 배경음악으로 전락시키는 뮤직비디오가 쏟아졌다. 정상의 인기 가수는 물론 어지간한 신인 가수의 경우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음악채널 m.net이 1999년 이후 매년 열고 있는 m.net 뮤직 비디오 페스티벌의 올해(27일 오후 7시 서울 경희대 평화의 전당) 후보작만 놓고 보더라도 2000년 13편에 이르던 드라마 형식의 뮤직비디오가 올해는 9편으로 줄었다. 드라마 형식의 뮤직비디오가 여전히 적지 않지만 내용은 전과 확연히 구분된다.

2000년에는 베트남전을 재연한 조성모의 '아시나요'와 어릴 때 헤어진 장동건.차인표 형제가 미국 형사와 범죄자로 만나는 이야기를 다룬 스카이의 '영원', '장군의 아들'출연진이 모두 상하이로 날아가 찍은 김성집의 '기약'처럼 제작비 수억원이 들어간 스케일이 큰 대작 중심이었다.

그러나 올해 후보에 오른 드라마 형식 뮤직비디오 중 해외에서 촬영한 작품은 이수영의 '덩그러니'(일본)와 왁스의 '관계'(중국 상하이)가 전부다. 그나마도 헬리콥터가 등장하거나(아시나요), 미국 경찰차가 수십대 나오는 추격 장면(영원)처럼 큰 돈을 들이는 대신 허름한 음식점이나 뒷골목 격투기장에서 벌어지는 장면으로 노래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고 있다.

◇첨단 촬영기법 활용=첨단 촬영기법으로 올해 가장 화제가 된 작품으로는 이정의 '다신'(연출 홍종호)을 꼽을 수 있다. 영화 '매트릭스'로 첫선을 보인 3백60도 회전 정지장면인 플로 모션 기법을 쓴 '다신'은 50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화제가 됐다.

이 외에도 비행기 프로펠러 엔진으로 엄청난 바람을 일으켜 가수를 하늘로 날려버린다든가, 인물과 배경을 따로 촬영해 합성하는 방식으로 얼굴과 몸이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장면 등은 네티즌의 수많은 패러디 작품을 낳기도 했다.

지난해 '마이 스타일'로 뮤직 비디오 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던 조PD는 올해도 '비밀일기'로 주목받았다.

조PD의 친구이자 미국 유명 만화작가와 공동작업을 하기도 한 일러스트레이터 출신의 김현석 감독이 만든 '비밀일기'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노래의 느낌을 잘 살렸다.

◇동성애… 신비감… 눈길 끌기=큰 돈 들이지 않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올해 인구에 가장 많이 회자된 작품은 빅마마의 '브레이크 어웨이'다. 외모로 승부하는 립 싱크 가수들을 먼저 보여주다 뒤에서 노래하는 빅 마마를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극적 반전을 통해 가창력 있는 그룹이란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세븐의 '와줘'도 요즘 여성들이 바라는 남성상을 멋지게 연출해 주목받았다.

이 두 작품을 빅마마와 세븐의 앨범을 기획한 음반 기획자 박경진 대표가 직접 연출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한편 성적인 코드도 올해 뮤직비디오의 주요한 흐름의 하나다. 여성적인 섹시함으로 무장한 이효리의 '10 minutes'(연출 서현승), 그리고 남자를 눈 아래로 내리깔고 보는 당당한 섹시함으로 이효리의 대응 카드로까지 떠오른 렉시의 '애송이'등이 여기 속한다.

동성애적인 코드도 빠질 수 없다. 신비주의 전략으로 얼굴을 감춘 H의 '잊었니' 뮤직비디오에는 H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엄정화가 남자 가수인 H의 노래를 립싱크해 중성적인 느낌을 준다. 어린 여성모델과 모호한 애정관계를 표현해 동성애적인 느낌을 강하게 준다.

안혜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