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시국관심 시비(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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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교문을 열어주세요. 재복이와 함께 들어가고 싶어요.』
『부당한 징계 억울합니다. 우리는 같이 공부하고 싶어요.』
28일 오전 7시30분 서울 고척2동 고척고등학교 정문앞. 이른아침 등교시간에 이 학교학생 5백여명이 책가방을 둘러멘채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이 학교 3학년생인 이재복군(18)이 학교 허가없이 학급신문을 만들어 배포했다는 이유로 25일 퇴학당한 것이 문제의 발단.
학생들은 이틀째 굳게 닫힌 교문앞에 모여 어깨동무를 한채 이군을 둘러싸고 연좌,「징계철회」를 요구했다.
『학급신문에 일간지 시사만화를 실었다는 이유로 퇴학까지 시킨 학교측의 처사를 정말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난 2월에도 교지에 실릴 앙케트문항중 「만약 통일이 된다면」등의 내용을 삭제한데 항의한 학생들을 징계한바 있습니다.』
학생회간부들은 자신들이 결코 철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며 농성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윤재봉 교감(55)은 『미담이나 학교소식을 실어야할 학급신문에 학생신분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유서대필문제등 사회문제를 거침없이 실어 이를 징계한 것』이라고 밝혔다.
『거리에서 쉽게 사 볼수 있는 신문에 온갖 사회문제가 실려있는데도 학교안에서는 무조건 관심을 두지 말라고 합니다.』
6시간에 걸친 농성을 자진해산하고 교실로 들어가던 한 학생이 알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우리는 공부만 하는 기계가 아니예요.』
『순진한 학생들을 선동하는 「배후」가 분명히 있습니다.』
학생들과 학교측의 끝없이 오가는 주장을 지켜보던 한 교사는 다가오는 학력고사까지의 날짜를 헤아리며 걱정하고 있었다.<홍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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