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살림 첫 과제가 외유인가(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서울과 지방의 일부 기초의회의원들이 의회가 개원되자 마자 집단외유를 추진하고 있는 사실은 국민의 실망과 빈축을 사기에 충분하다. 경주시 의회의원들이 자매결연을 한 일본의 내량시의회 초청형식으로 일본을 여행중이며,서울시내 상당수 구의회가 외국의 지방자치제 운영을 「연수」한다는 명목으로 무더기 외유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지방자치제가 30년동안이나 중단돼 있었고 이번 선출된 의원들이 의회운영의 경험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이들이 지방자치제가 실시중인 국가들의 운영실태를 연수한다는 것은 얼핏 보면 명분에서나 실제적으로 매우 합당하고 적절한 일 같다. 또 의원들 자신이 선진외국의 자치단체를 돌아보고 싶다는 뜻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계획되고 있는 이들의 외유일정을 보면 불과 1주일 안팎의 짧은 기간이다. 물론 충분한 기간의 연수와 시찰이 바람직하겠으나 궁색한 지방재정형편으로는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일줄 안다. 그렇다면 그 짧은 기간중 무엇을 얼마나 「연수」할 수 있겠느냐 하는 실효성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몇군데에서 브리핑이나 받고 의회시설이나 구경하고 돌아올 것이 뻔한 일이다. 이런 주마간산식 연수는 「연수」가 아니라 결국 외유에 그칠 공산이 십중팔구다.
근본적으로는 이들 지방의회 의원들의 발상과 행태를 비판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심정이다. 지방자치제가 부활되자 마자 당선된 선량이란 사람들이 맨 처음 들고 나온 과제가 자신들의 외유계획이라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지역사회의 현실과 현황 파악,안고 있는 문제점과 주민들의 애로사항 점검,예산의 균형된 배분과 집행 따위,초선의 선량으로서 수임받은 직무들이 산더미 처럼 쌓여 있을 터인데 기껏 한다는 게 놀러갈 생각인가 하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국민은 의원외교다,무슨 회의다,시찰이다 하고 갖은 구실을 붙여 걸핏하면 무더기 외유를 밥먹듯 하는 국회의원들의 행태에 매우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 시작하는 지방의회 의원들은 이에 물들지 않고 봉사의 기능을 앞세운 신선한 새 의회의 전통을 세워주기를 간절히 바라왔다.
지방의회는 정치단체가 아니며 이에 소속된 지방의원 또한 정치인이 아니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들은 내고장 지역살림에 대한 조언자요 감시자의 역할이 본분인 것이다.
지자제 운영에 관해 선발국의 경험이 필요하면 그 관계 전문학자들이나 그동안 많은 연수와 시찰의 경력을 쌓은 관련 공무원들의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원용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주마간산식 구경 보다는 이들 전문가들에게 집중적으로 연수를 받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어려운 지방예산을 아끼는 길도 될 것이다.
상황과 여건이 다른 외국의 사례는 기껏해야 참고사항에 불과할 뿐이다. 지방의회가 서둘러 할 일은 내고장 사정에 맞는 자치의 관행을 축적하는데 있지 남의 경험을 모방하는 일은 급하지 않다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