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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사장의 9년 분투기 “초상집 개처럼 뛰었으나…”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여기 한 중소기업이 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신기술을 개발했지만 공공기관들의 철저한 외면으로 홀로 뒷산에 올라 소주를 들이켜야 했던 중소기업 사장이 있다. 개발기간 3년, 출시 6년 만에 그는 창고에 가득 쌓인 재고와 생각지도 못했던 우울증·고혈압을 얻었다. 김동환 길라씨엔아이 사장이 이코노미스트에 보내온 절절한 사연을 소개한다.


몇 달 전부터 머리가 심하게 아프고 손과 발등이 따끔따끔했다. ‘이러다 말겠지’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에 갔더니 “머리(문제가) 아니라 고혈압”이라고 했다.

우리 집안 어디를 보아도 고혈압을 앓았던 조상이 없고 나 또한 정상 체중을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는데 웬 고혈압이란 말인가? 의사는 “신체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면서 “4년간 계속된 불면증으로 우울증까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불면증·우울증에 고혈압까지

나는 왜 우울증에 고혈압 진단까지 받아야 했을까? 사실 불면의 밤은 하루 이틀, 1, 2년의 일이 아니다. 2000년을 앞두고 세상이 떠들썩했던 1999년 정부는 인구가 감소하면 가격 경쟁력보다는 고부가가치 기술을 국가의 핵심 역량으로 삼아야 한다며 신기술 개발 지원책을 발표했다.

그중의 하나가 ‘건설 신기술 개발 지정 신기술 설계 의무법’이라는 게 있었다. 정부가 인정하는 신기술을 개발하면 건축물 설계 때 의무적으로 정부가 인정하는 신기술 개발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구매까지 일정 부분 책임지겠다는 내용에 귀가 솔깃해졌다. 항상 영업력의 부족을 절감하는 중소기업에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어린 시절 집안의 몰락과 소아마비 등으로 말 못할 시련을 거치면서 배운 게 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 길이 보인다는 것이다. 단돈 4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해 연매출 수십억원에 이르는 사업체를 하면서도 나는 희망을 갖고 살아왔다. 낮에는 거래처를 돌고, 밤과 주말에는 기술을 개발해 이제는 260개의 각종 특허를 받아놓고 있다.

그렇게 1994년 개발한, 볼펜 끝에서 불빛이 나오는 ‘반디라이트 펜’은 한때 일본 소비자가 뽑은 상을 받기도 했다. 일본인들 앞에서 한국어로 수상 소감을 말할 때의 기쁨이란….

김동환 사장은…

1957년생. 1987년 단돈 4만원으로 경찰들이 사용하는 가스총 판매로 사업을 시작했다. 집안 몰락으로 중졸 학력에 그쳤지만 발명에 매진, 현재 260여 개의 관련 특허가 있다. 1994년 발명한, 볼펜 끝에서 불빛이 나오는 ‘반디펜’은 해외에서 더 유명한 히트상품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23억원. 전형적인 중소기업이다.

사업가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좋은 날만 계속되지 않는다. 1년 후에는 뭘 먹고 살아야 할지, 5년 후에는 또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게 사업가다. 그럴 때 들려온 것이 정부의 기술 지원책이었다. 물론 그것만 믿고 무턱대고 일을 벌이는 바보는 없을 테지만 내게는 충분히 그럴듯한 뉴스였다.

사업가이자 발명가로서 나는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눈 매슬로 이론을 믿고 있다. 시장과 소비자를 바라보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의 히트상품이라 할 수 있는 반디펜 이후에는 과연 뭘 먹고 살아야 하는 고민을 할 때도 나는 매슬로 이론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언제까지 볼펜만으로 먹고 살 수는 없다…,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되면 시장은 어떻게 바뀔까…,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뭘 바랄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무조건 생존 단계를 벗어나는 매슬로 2단계, 다시 말해 ‘안전’을 추구할 것이다…, 그렇다면 안전에서 저평가되고 있는 게 뭘까….’

어림잡아 100편 이상의 논문을 탐독했다. 유망하다고 무조건 뛰어드는 건 자살행위다. 몸집 큰 기업들과 맞대고 경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구매를 일정 부분 책임진다고 했으니 아무래도 민간보다는 공공부문 쪽이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어렴풋하게 뭔가가 다가왔다.

도로 표지병이었다. 도로 표지병이란 야간이나 비가 올 때 차선을 표시하기 위해 차선에 못처럼 박아둔 표지다. 의외로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안 돼 있고, 제대로 된 상품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느낌이 왔다. ‘여기구나!’ 어느 정도 먹고 살만 해지면 안전에 대한 욕구가 분출할 것이고, 도로에도 안전 바람이 불 것이다. 확인해 본 현장의 표지병들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그때가 1998년. 당시 우리 회사는 한마디로 호황이었다. 반디펜에 해외 주문이 쏟아졌고, 환율까지 도와주는 바람에 환차익으로만 연 30억원의 추가 매출을 올렸을 정도였다. 생전 처음 경험한 ‘돈 벼락’이었다.

피눈물나는 고생을 하면서 마음에 새긴, 날 좋을 때, 안 좋은 때를 준비해야 한다는 교훈대로 ‘풍부한 자금’을 표지병 개발에 쏟아 부었다. 품질이 낮아 1년에 한 번씩 소모품처럼 갈아끼워야 하는, 그 때문에 아까운 세금을 낭비하고 있는 게 바로 내가 노리던 시장이었다.

언뜻 보면 간단한 제품이었지만 개발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안전’을 보증하는 제품이어야 했기 때문에 수많은 실험을 거쳐야 했다. 반디펜을 수출하면서 경험한, 세계시장을 염두에 두자는 생각에 경기대 미술대학장인 이해묵 교수에게 디자인까지 의뢰하면서 시간이 길어졌다.

그동안 반디펜으로 벌어들인 자금이 숨 쉴 틈도 없이 연구 개발에 투입됐다. 해외 주문이 끊어지기 전에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야 했다. (지금까지 순수 개발비로 27억원쯤 들어갔다.)

정부 신기술 인증 있으나 마나

그렇게 꼬박 3년이 넘은 2001년 4월, 신제품을 내놓았다. 하지만 자식을 낳았다고 다가 아니듯, 신제품을 만들었다고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 이제는 발품을 팔아야 할 차례. 생각해보니 그때부터가 본 게임이었던 셈이다.

노력에 대한 보답인지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음해인 2002년 과학기술부의 국산신기술인정(KT)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2003년에는 건설교통부의 건설기술지정(CT)을 받았고, 2005년에는 산업자원부의 신제품인증마크(NEP)와 환경부의 환경신기술지정(ET: 환경마크)까지 받았다. 동종제품 중 유일하게 받은 인증들이다.

▶김동환 사장이 개발한 반디표지병(오른쪽)과 일반 제품. 반디표지병은 한번 설치하면 견고하게 부착되는 데다 눈에 잘 띄는 게 특징이다.

이들 지정·인증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기술로 공공기관이 공사를 발주할 때 의무적으로 일정 부분을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면 환경에 무해한 무독성 제품을 써야 하는 게 ‘환경 마크’다.

여기에 중소기업청이 주는 동종 제품 중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인정하는 제품에 주는 ‘성능 인증’도 받아냈다. 이 성능 인증은 속이 탈 정도로 과정이 까다로웠다. 구매한 뒤 하자가 발생하면 감사원은 공무원에게 ‘왜 그 제품을 썼느냐’는 책임을 묻는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새로운 제품을 쓰는 것을 꺼린다.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구매 담당자가 아니라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일종의 면책특권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엄격한 심사를 거치고, 이걸 통과한 제품에는 수의계약을 해도 괜찮을 정도로 큰 혜택을 준다. 우리는 이런 모든 테스트를 통과했다. 테니스로 말하자면 그랜드슬램을 이뤄낸 것이다. 동종제품 중에서 5개 모두를 받은 제품은 우리밖에 없다. 한마디로 정부가 전폭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박스 기사 참조>

그러는 동안 정부는 ‘공공기관은 해당 품목의 구매액 중 100분의 20 이상을 인증 신제품으로 구매해야 한다’고 정하는 등 기술형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여러 법령을 발표했다. <박스 참조>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건축물 공사에는 정부가 인정한 제품이 사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청신호였다.

그러나 그건 꿈이 아니라 신기루였다. 현실과 법은 너무 멀었다. 한번은 공공기관이 꿈쩍도 하지 않아 중소기업청(중기청)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더니 “우리가 중기청 산하기관인 줄 아느냐”고 되레 역정을 냈다. 국내 연간 시장 규모가 500억원 정도에 머물다 보니 ‘별것 아닌 사소한’시장으로 취급받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이런저런 관행에 어찌 해볼 수 없는 ‘흑막’까지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었다. 정말이지 그동안 운동화 몇 켤레가 족히 닳을 정도로 많은 곳을 쫓아다녔지만 돌아오는 건 절망뿐이었다. 전에는 잘 몰랐던 공공부문 시장 뚫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했다.

2002년 월드컵을 1년 앞두고 제품을 개발했을 때 우리는 축구공 모양의 표지병을 들고 축구경기장을 건설하고 있던 한 지방자치단체를 찾아갔다. 하지만 담당자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천신만고 끝에 만나기는 했는데, 들어보지도 않고 하는 말이 “예산이 없다”였다.

“월드컵을 위해 무료로 해주겠다”고 했지만 “특정 업체 것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안 되겠다 싶어 소개해준 분을 찾아가 애원했다. 그렇게 해서 3000개(5100만원)를 무료로 (그것도 가까스로) 납품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후로 설치 계획이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쏜살같이 달려가 봤지만 담당자는 우리 제품이 불가한 이유를 줄줄이 읊기에 바빴다.

그렇다고 물러서면 이 나라의 중소기업인이 아니다. 영업도 아니다. 찾아가고 또 찾아가자 어느 날 담당자가 ‘사무실에서’ 이런 말을 했다.

“사장님, 표지병이 성능과 가격으로 결정되는지 아십니까?”

나도 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불쑥 화가 치밀어서 “나도 죽겠다”고 했더니 담당자는 귀찮다는 듯 한마디를 더했다. “됐어요. 말귀 알아들으셨으면 그만 합시다.”

비규격품을 5배 주고 설치

터벅터벅 시청 청사를 걸어 나온 얼마 뒤, 그래도 영업이란 한번 더 찾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에 찾아간 월드컵 경기장 주변 도로에는 우리 제품보다 개당 1만원은 더 비싼, 그러나 성능은 훨씬 떨어진 제품이 심어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1년 뒤 그 시청 청사가 뉴스에 나왔다. 시장과 담당자 등 몇 명이 뇌물 수뢰 사건으로 구속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서울시청 앞 도로에 시범 설치돼 있는 표지병. 다른 제품보다 눈에 훨씬 잘 띈다. 반디표지병은 가격이 좀 비싸지만(1만1000원) 내구성이 좋고 수명이 7~8년으로 월등한 품질을 자랑한다.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플라스틱 제품은 가격은 싸지만(3000원) 수명이 1~2년에 불과해 매년 교체가 불가피하고 세금 낭비가 많다.

날이 갈수록 가슴에 피멍이 들었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한 광역 자치단체의 고위 관계자가 준 멍은 지금도 시퍼렇게 남아 있다. “한번만 봐달라”고 애원한 끝에 ‘잠깐’ 만날 기회를 얻었다. ‘옳지. 이 정도면 뭐가 되겠지.’ 그를 만나던 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이발도 한 후 마치 경쟁 프레젠테이션처럼 모든 것을 준비해갔다. 그런데 그는 몇 분 지나지 않아 내 말을 잘랐다.

“그러니까 결론이 뭡니까?”

결론? 그건 나도 바라는 바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요점을 정확히 몰라서 말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어떤 결론….”

“아니 (자치단체의 행정구역 전체에 표지병을 깔면) 금액이 얼마나 되냐고요?”

“다 하면 한 150억원 정도 될 겁니다.”

“얼마 안 되네. 알았어요.”

고위 관계자와의 만남은 그렇게 끝났다. 전체 물량 150억원이면 이른바 떨어지는 ‘떡고물’이 얼마 안 되지 않으냐는 의미였다. 그는 선거를 통해 들어온 정치인 단체장의 핵심 인사였다. 이권을 따지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억울하기도 하고, 다시 해보자는 생각에 그 자치단체에 청원서를 보냈다.

한참 만에 답변이 왔다. “설계 자문 위원회에서 할 일”이란다. 그 전에는 그런 말도 없었다. 그곳은 지금도 건교부 규격에도 없는 비규격품을 5배나 비싼 가격으로 설치하고 있다. 감사원 감사(2000년)에서 지적을 받았음에도 말이다.

오죽했으면 몇 달 전 그곳에 ‘한번 더’ 다녀온 직원이 “이럴 수가 있습니까”하고 울분을 터뜨렸다. “그렇게 비규격품을 많이 설치하면서 우리한테 온갖 핑계를 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는 직원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란 별 게 없다.

“야, 걱정하지마. 정의는 승리하는 거야.”

도로 표지병은…

야간이나 비 올 때 차선 표시를 위해 차선에 심어놓은 안전시설물. 현재 연간 교체 비용만 45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신설 시장 50억원 정도를 더하면 연간 시장은 500억원쯤 된다. 브라질이나 멕시코·사우디 같은 곳은 높은 온도로 차선보다는 표지병을 설치하는 곳이 많아 시장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큰소리로 ‘뻥’을 쳤지만 정작 그날 저녁 잘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한 병 사들고 집 뒤 야트막한 산에 올라가 ‘빽’ 없는 설움을 달래야 했다. 더 서러웠던 것은 그럼에도 법과 정부 정책밖에 믿을 게 없는 내 신세였다.

그렇다고 앉아서 죽을 수만은 없어 민간기업의 빌딩 지하 주차장마다 쫓아다니고, 전선 가설공사로 도로를 파헤친 곳을 원상복구시키는 곳을 따라다녔다. 그렇게 해서 올린 지난해 매출이 4400만원(부가세 포함)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가 벌어졌다. 영업을 위해 지방 한번 갔다 오면 적어도 20만원은 든다. 한두 번 가서 될 일이 아니니 보통 열댓 번은 가야 했다. 그렇게 얼굴 좀 익혀 놓으면 어느 순간 담당자가 바뀌어 버린다.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그뿐인가? 여기 가면 저리 가보라고 하고, 저기 가면 아까 갔던 곳으로 가라고 한다. 탁구공처럼 오락가락하다 보면 막말로 내가 중소기업 사장인지, 초상집 개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뭐, 그래도 좋다. 물건만 팔 수 있다면….

그렇다. 나는 발명가이기 이전에 장사꾼이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법에 그런 조항이 있으니 검토해 달라고 하는데도 그들은 마치 천 년을 펄펄 끓는 가마솥에 넣고 삶아도 변함없는 바위 같다. 정말이지 반응이 없다. 얼마 전부터는 하도 굽실거려 공공기관 천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형광등인지 백열등인지도 모른다.

힘없는 중소기업에 뭐가 있을까? 기술과 의지와 법밖에 없다. 그동안 중기청·조달청·건교부·환경부를 통해 의무 구매에 관한 공문을 협조받아 4년 동안 1200회 이상 보냈으나 구매기관은 응답이 없다. 국내 전시회라도 참가하면 반응이 좀 있을까 해서 환경 전시회, 조달 전시회, 건설 순회 전시회를 모조리 쫓아다녔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6년 동안 운동화가 닳도록 다니면서 나는 법보다 앞서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관됐지만 도로안전시설물에 연간 예산 4000억원이 배정되는 기관을 드나들면서 나는 볼 것, 못 볼 것을 다 봤다.

정말 놀라웠던 것은 어찌어찌해서 내 사정을 알게 된 최고책임자가 면전에서 “개선책을 찾아보라”는 지시를 내리는데도 꿈쩍도 않았던 담당부서의 모습이었다. 정말이지 안 되는 이유를 줄줄이 나열하는데 시쳇말로 ‘졌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화가 난 최고책임자가 “하라면 해!”라고 하는데도 “그러다가 ○○님께서 망신당하십니다”고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것은 ‘그들만의 네트워크’가 있고, ‘불문율’이 있다는 것이다. 불문율이란 발생하는 매출의 10%를 떼 주는 것이다. 하도 귀찮게 찾아가자 누군가가 내게 귀띔했다.

“당신은 그걸 못해서 못한다. 꿈 깨라.”

중소기업이라고, 이만큼 노력했으니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니다. 공정한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나를 포함해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치는 중소기업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원하는 진정한 중소기업 정책은 무조건적인 자금 지원이 아니라 혼자 일어설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그물을 만드는 기술을 만들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 개발하라고 지원만 할 게 아니라 기술을 창조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이다.

기회를 줬는데도 해내지 못한다면 그건 능력 부족이다. 600여 신기술 인증기업과 400개 신제품 인증기업을 잘 살펴보면 엄격한 심사와 검증을 철저히 거쳤기에 법만 지켜주면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는 성장을 할 수 있는 기업이 많다.

“나는 평등한 기회를 원한다”

법률 시행도 명확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고의적으로 의무 구매를 지키지 않을 경우 형사 처벌 조항까지 마련했다고 들었다. 그런 면에서 감사원 감사도 바뀌어야 할 게 있다. 현재 구매 부문에 관한 감사는 “왜 (특정 상품을) 샀느냐”에 맞춰져 있다.

그러다 보니 징계가 두려운 담당자들은 무조건 공개경쟁입찰에 넘겨 싼 제품만 사용한다. 이제는 “왜 이런 제품이 있는데 사용하지 않았느냐”는 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정부가 팔짱만 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 4월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공공기관마다 의무적으로 5% 정도를 구매하도록 했다. 120개 공공기관 별로 아예 목표치를 제시한 것이다(중소기업 진흥 및 제품 구매 촉진에 관한 법률 제10조 제2항). 감사원·중기특위·중기청의 합동감사가 있을 것이라는 내용도 같이 발표됐다.

아마 정확한 수치가 나오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어떻게든 그럴듯한 수치가 보고됐을 것이다. 공공기관들만 떠올리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지난 연말이었다. 2007년을 며칠 남겨둔 어느 날 우리가 적지 않게 괴롭힌(?) 중기청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동안 애 많이 쓰셨는데 좋은 일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도로 표지병은 금액이 적다는 이유로 통합 발주로 이뤄졌다.

큰 기업에 이런저런 공사 모두를 한꺼번에 주면 그 기업은 작은 분야(예를 들면 표지병 같은)를 재하청 준다. 바로 여기서 ‘뭔가’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부터 도로 표지병이 독립 항목이 된 것이다(2006년 12월 29일자 중소기업청공고 제2006-240호).

적어도 내게는 공정한 경쟁을 위한 기본 판이 마련된 셈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간청했던 것이 드디어 이뤄진 것이다. 내 상품을 사달라는 게 아니라 평등한 기회를 달라는 것이었다.

전화를 받고 눈물이 났다. 지금부터는 그야말로 내 능력에 달렸다. 이달(1월)부터 TV광고도 내보낼 예정이다. 여기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굶어 죽기보다는 싸우다 죽고 싶다. 공정한 기회만 주어진다면 중소기업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회가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세계발명대회 금상까지 받았다

도로 표지병은 발광부(반사체)와 설치부로 나뉜다.<사진 참조> 발광부는 오래전부터 오스트리아의 세계적 기업인 스와르브스키가 특허와 시장을 독점하고 있어, 기술개발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대신 김동환 사장은 설치부에서 새로운 6개의 관련 특허를 획득했다.

그는 이 제품으로 2005년 11월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세계발명대회에서 금상과 환경부문 특별상을 받았다. 현재 세계의 모든 기술은 설치 시 환경 유해 호르몬 물질인 페놀을 함유한 에폭시 본드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 제품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김홍상 명지대 교통공학과 교수
“축구공 모양의 반구형 모양새도 좋지만 내구성 또한 좋다. (설치 후 도로 표면 위로) 돌출해 있는 각도가 부드러워 차량들이 별 저항 없이 타고 넘어갈 수 있고, 마모도 적다. 특히 겨울철 파손에 강하다. 또 강력하게 부착되는 특성은 터널 같은 곳에서 쉽게 이탈되는 현재 표지병들이 타이어 파손을 통해 2차 사고로 이어지는데 그런 면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강병도 자동차성능연구원 차장
“반디표지병의 가장 큰 장점은 쐐기 형식으로 돼 있다는 것과 일명 ‘고양이 눈’이라는 유리알 반사체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제품은 설치한 후 1~2년만 되면 흔들거리고 빠져버리는 플라스틱 제품에 비해 대단히 견고한, 획기적인 제품이다.”

중소기업 신기술 관련 법규

▶ 친환경상품 구매촉진에 관한 법률 제6조: 공공기관의 장은 상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친환경 상품을 구매하여야 한다.(친환경상품진흥원 제2788호)

▶ 건설기술관리법 시행령 제34조: (신기술 활용 등)4항: 발주청은(…) 지정고시된 신기술을 특멸한 사유가 없는 한 그가 시행하는 건설공사의 설계에 반영하여야 한다.(건설교통부 건설신기술(N. E. T) 372호): 동종제품 중 반디 표지병만 획득.

▶ 산업기술혁신촉진법시행령 제24조: 공공기관은 인증제품이 있는 경우 100분 20을 의무구매하여야한다. (산업자원부 NEP-2005-050)

▶ 중소기업 진흥 및 제품구매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4조 3항: 기술개발제품 등에 대한 우선 구매에서 중소기업청장은 … 공공기관에 대하여 우선구매대상 기술개발제품의 구매목표 비율이 중소기업물품 구매액의 5% 이상이 되도록 요구할 수 있다.(산업자원부 NEP-2005-050)

▶중소기업 진흥 및 구매 촉진에 관한 법률 제14조 2의 2항: 성능 보험에 가입된 제품을 구매계약한 공공기관의 구매책임자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입증되지 아니하는 한 그 제품의 구매로 인하여 발생한 손실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김동환 길라씨엔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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