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위, 선관위 법인·단체 정치자금 허용안에 "과거 회귀" 전원 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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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진 국가청렴위원장은 2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출한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 중 정치자금 조달과 관련된 부분에 문제가 있어 반대한다"고 밝혔다. 청렴위 창립 5주년을 이틀 앞두고 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다.

정 위원장은 특히 "청렴위원 전원회의를 열어 내린 결론"이라고 기관의 공식 의견임을 분명히 했다.

선관위는 지난해 12월 12일 선거법과 정당법.정치자금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선관위는 "선거운동 자유를 확대하고 정치자금 후원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주요 내용은 ▶예비 후보자의 선거운동 확대 ▶해외부재자투표제 도입 ▶투표참여자 우대제도 도입 ▶대선공약집 배부 ▶대선 후보 후원회 허용 ▶법인과 단체의 정치자금 기탁 허용 등이다.

청렴위가 제동을 건 대목은 정치자금과 관련된 두 가지다. 정 위원장은 "무소속을 포함한 대선 후보 후원회를 1년 전부터 설치하는 것은 너무 길어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기에 선거 과열과 후보자에 대한 줄서기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청렴위 정기창 제도개선단장은 "6개월 정도로 기간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자금을 모은 후보자가 출마하지 않거나 쓰고 남은 경우 처리 방안에 대해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법인과 단체가 정치자금을 내도록 허용하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돈 안 쓰는 선거 분위기 정착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특정 정당을 지목할 수는 없지만 기업들이 자금에 쪼들리는 각 당을 위해 보험 차원에서 선관위에 돈을 낼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 위원장은 "2004년 법인의 정치자금 제공을 금지하는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깨끗한 선거 분위기가 정착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몇 년도 안 돼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청렴위는 국회에서 입법 과정이 시작되면 의견 조회 형식으로 공식적 의견을 밝힐 계획이다. 하지만 선관위의 개정 의견은 여야가 모두 찬성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정치권에서는 선관위가 개정 의견을 낼 당시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지금은 대선 주자가 '잠재적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는데, 이에 숨통을 터 주는 것으로 환영한다"고 말했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합법적으로 돈을 모을 길을 터주지 않으면 오히려 불법을 조장할 수 있다는 여론이 있어 고심 끝에 마련한 방안"이라며 "기관별로 의견을 낼 수 있지만 선관위는 입법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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