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도 부산의 여도 탈바꿈/정용백 사회부기자·부산(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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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부마항쟁의 진원지로 10·26사태의 기폭제가 됐던 전통 야도 부산에서 거대여당 민자당 후보들이 광역의회 51개 의석중 50석을 차지,압승을 거두며 부산의 종래 이미지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부산지역은 선거초반부터 3당야합으로 일그러진 「민주 부산시민의 자존심 회복」을 내건 민주당 이기택총재와 「부산이 낳은 지도자」 김영삼 민자당대표의 한판 대결장으로 비춰졌다.
지난 수십년간 이 지역에서 야당득세를 가능케 했던 민의가 투철한 반독재·민주화 지향적이었느냐,아니면 호남의 「녹색바람」 김대중 신민당 총재에 대적하는 김영삼대표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였느냐를 판가름하는 장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선거유세장마다 지역개발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지자제와는 별로 관련이 없는 거물 정치인들의 면면이 주메뉴로 등장했었다.
야당·무소속 후보들은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김영삼씨는 왜 서민들의 모가지만 비트느냐』『김씨는 3당야합으로 부산시민들을 배반했다』며 끈질기게 김대표를 공략했고 반면 여당 후보들은 너나 할 것없이 『그래도 부산은 김영삼』을 내세우며 맞섰다.
부산에서 여당이 압승한 것은 「부산에서도 대통령을 키워보자」는 철저한 지역이기주의가 발동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어 「지자제 무용론」을 지역주민들 스스로가 빚어냈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김영삼 신드롬」은 여당 불모지이자 이기택총재의 지역구인 해운대에서도 돌풍처럼 불어닥쳤다.
해운대지역은 당초 팽팽한 접전이 예상됐으나 막상 뚜껑을 열자 30여년간 야당생활을 하며 기반을 닦아온 민주당베테랑 후보들이 너나할것 없이 압도적인 표차로 허물어졌다.
동구1선거구 무소속 노영민 후보(34)등 전교조 해직교사 2명도 참교육·반민자 등을 외쳤으나 부산땅에서 더이상 먹혀들지 못하는 슬로건임을 입증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민주화와 군부독재 비판 목소리만 높여도 당선되던 과거의 부산이 아니었다.
철저한 지역 이기주의속에서 민자당으로 몰린 표가 지역감정을 심화시키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중앙정치판이 아닌 지방의회에서 주민들의 가슴으로 화살이 돼 되돌아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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