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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하우스’ 건축가 이창하, 운명적인 세 번째 결혼

중앙일보

입력

여성중앙푸근한 인상과 수줍은 웃음으로 소외된 이웃에게 감동을 선물하던 남자, ‘러브하우스’ 건축가 이창하가 3년 전 26세 연하 아내와 조용히 재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큰딸보다 어린 아내는 임신 8개월,
두 번의 실패 딛고 배다른 여섯 남매와 다시 찾은 행복”

“자상한 성격이고 잘 챙겨주는 분이어서 또래들한테는 없는 편안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 처음부터 이성으로 좋아한 건 아니지만 점점 마음이 끌렸죠. 처음에 ‘내가 이 사람 좋아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는 좀 망설이기도 했어요. 살다보면 나이 많은 사람이랑 사귈 수도 있지만 아빠랑 나이가 비슷하니까요(웃음). 그런데 사랑하니 문제될 것이 없더라고요 ”

흔히들 사랑에는 국경도 없고 나이도 없다고 말하지만 띠 동갑을 넘어서는 커플은 아무래도 관심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띠를 두 바퀴 돌고도 모자라 엄마가 딸보다 두 살 어린 가족이 있다면, 주위에서는 놀라움 섞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신동엽의 러브하우스’로 유명한 건축가 이창하(52) 가족이 바로 그렇다. ‘러브하우스’ 디스플레이팀에서 일하던 26세 연하 이주영씨(26)와 3년 전에 재혼해 새 가정을 꾸린 것. 현재 아내는 첫아이를 출산하고 둘째를 임신한 지 8개월째다. 주영씨의 첫아이가 이창하의 다섯째 아들이니까 조만간 막내가 태어나면 그는 여섯 아이의 아빠가 된다.

‘러브하우스’ 스태프였던 스물셋 꽃다운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다

그는 결혼에 두 번 실패한 아픔을 가진 사람이다. 가난해도 화목하게 사는 가정에 예쁜 집을 선물하는 것은 단란한 가족을 향한 그의 동경도 한몫했다. 이혼 후 미국에 살던 전처가 두 아이를 한국으로 돌려보냈고, 재혼한 부인 사이에도 아이가 둘이었지만 가족 간의 불화로 또 이혼한 남자. 첫째와 둘째는 데리고 살았고 셋째와 넷째도 주말마다 만나면서 아빠 노릇을 계속 했건만 싱글의 외로움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때 이창하의 곁에 나타난 사람이 바로 지금의 아내다.

“이혼하고 5~6년 혼자 지내면서 솔직히 많이 외로웠어요. 그때가 ‘러브하우스’ 2편 찍을 때였는데, 아내는 소품을 담당하던 스태프였죠. 처음 봤을 때부터 인상적이었어요. 솔직히 마음에 들었지만 내색은 못했어요. 내가 아무리 순수한 마음이어도 천하의 나쁜 놈 취급 받기 딱 좋은 그림이니까요. 두 번 이혼한 남자가 딸 또래 여자랑 만난다는데 그걸 누가 좋게 보겠어요.”
결혼 얘기를 듣고 싶다는 질문에 민망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수줍게 웃는다. 3년 동안 꼭꼭 숨겨왔던 사실이 알려진다는 것에 대해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러면서도 아내 얘기를 할 때마다 입 꼬리가 귀에 걸리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미대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예술적인 취향이나 감수성이 비슷해 서로 말이 잘 통했다. 나이 차이는 많았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가끔씩 단둘이 오붓하게 만날 때도 있었고,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농담 삼아 ‘두 분 잘 어울린다’고 바람을 넣기도 했다. 주위의 시선이 신경 쓰였지만 그녀에게 조금씩 쏠리는 마음은 통제할 수 없었고 가끔씩은 ‘저 사람도 날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상상도 했다. 이창하는 고민 끝에 장성한 두 자녀에게 넌지시 도움을 청했다.

“아빠가 요즘 만나는 사람이 있는데 나이가 너희들이랑 비슷하다고 솔직하게 얘기했어요. 어차피 결혼을 생각한다면 아이들도 알아야 하잖아요. 큰아들 녀석이 마음에 들면 그 사람한테 진심으로 얘기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거기에 용기를 얻어서 큰맘 먹고 말을 꺼냈죠.”
로맨틱한 프러포즈도 생각해봤지만 진실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저녁을 먹으며 진지하게 얘기를 꺼냈다. 알고 보니 상대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이창하가 무작정 결혼하자는 얘기를 꺼냈을 때 처음에는 웃어넘겼지만 몇 번의 프러포즈 끝에 못 이긴 척 고개를 끄덕였다. 딸 또래 여인에게 프러포즈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겠지만 여자 입장에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기자의 약혼녀보다도 어린 이주영씨가 앳된 목소리로 당시를 회상한다.

“성격이 원래 좀 급하세요.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우리 결혼하자’ 그러더라고요. 처음에는 좀 반신반의했는데 자꾸 결혼 얘기를 하니까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세뇌당했죠(웃음).”
문제는 처가의 허락을 받는 것이었다. 스물셋 꽃다운 딸의 배필로 50대 이혼남을 인정할 부모가 어디 있으랴. 예상대로 반대가 대단히 심했다. 허락을 얻기 위해 주말마다 광주 처가에 내려가 살다시피 했고 마침내 장모의 허락도 받았다.

“장인어른이 광주 MBC 간부인데, 내가 방송에 출연할 때 착하고 순해 보이는 인상을 받으셨대요. 그분이 ‘딸 선택을 믿어보자’면서 장모를 설득했죠. 주말마다 처가에 내려가 같이 지내면서 거부감도 줄였고요.”
주영씨가 그를 받아들인 이유는 자상한 성격과 편안한 마음 씀씀이였다. 마음 맞는 상대를 찾는 데 나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고.

“자상한 성격이고 잘 챙겨주는 분이어서 또래들한테는 없는 편안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 처음부터 이성으로 좋아한 건 아니지만 점점 마음이 끌렸죠. 처음에 ‘내가 이 사람 좋아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는 좀 망설이기도 했어요. 살다보면 나이 많은 사람이랑 사귈 수도 있지만 아빠랑 나이가 비슷하니까요(웃음). 그런데 사랑하니 문제될 것이 없더라고요.”

광주 MBC 간부인 장인어른 도움으로 반대하던 장모 설득

주영씨는 결혼 당시 지인들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친구들과도 그동안 연락을 끊다시피 하면서 살았다. 숨기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남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아이를 낳은 후에야 용기를 내서 전화를 걸었는데 친구들은 놀라워할 뿐, 그녀를 이상한 눈초리로 대하지는 않았다.

남들에게는 유별나 보여도 정작 두 사람은 불편한 것 없이 잘 살았다. 여느 부부처럼 신혼 초기에는 가끔 다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싸울 일이 없어졌다고. 첫째 부인 사이에서 얻은 장녀 정현씨(28)와 장남 범도씨(26)도 친구 또래의 엄마와 원만하게 지냈다. 이창하는 특히 아내와 큰딸의 관계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는데 두 사람이 서로 존중하면서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고마운 마음도 든다. 호칭 문제로 한동안 고민했지만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정리한 엄마와 큰 아이들. 가족끼리 얼마나 교감하고 이해하느냐가 중요하지 나이가 몇 살인지는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좋아서 결혼한 부부끼리는 문제없다고 해도, 엄마가 딸보다 어리다는 사실이 얼마나 불편하고 서로 민망하겠어요. 그런 면에서는 아이들한테 가끔 미안한 마음도 들어요. 아내한테도 마찬가지고요. 내 욕심에 다른 사람들 힘들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죠. 그런데도 잘 지내주니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엄마랑 살면서 주말마다 놀러오는 범오(11)와 가연(10)이, 그리고 2살배기 막내 범중이까지 모이면 온 집안이 북적거린다. 배다른 형제 간에 갈등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우였다. 기자에게 결혼 얘기를 들려주던 날도 일본에 가 있는 둘째아들만 빼고 여섯 식구가 용평 스키장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식구들 많이 모여 와글거리며 사는 것을 좋아하는 이창하가 요즘 누구보다도 행복한 이유다.

아내는 결혼 후에도 꾸준히 건축 관련 일을 했지만 요즘은 아이 때문에 휴직한 상태다. 임신 8개월째 접어들었고 출산 예정일이 3월 18일이어서 서서히 출산 준비를 시작하는 중이다. 배가 불러오면서 집안일은 쉬고 있지만 평소 내조를 잘하고 음식 솜씨 뛰어난 편이어서 살림꾼으로서도 백점.아내가 뚝딱 만들어내는 간식거리들은 아이들에게 그야말로 인기 만점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아이 앞에서는 똑똑하고 의젓한 엄마라는 점도 이창하가 늘 든든하게 생각하는 부분.

“아이를 얼마나 잘 키우는지 몰라요. 어린 나이에 둘째까지 가졌지만 집사람이라면 충분히 잘 키울 거라고 믿어요. 예정일까지 시간이 더디 가는 것 같아서 답답할 정도인 걸요. 남들은 많이 낳아봤으니까 이제 무덤덤하겠다고 말하는데 아빠 되는 설렘은 언제나 똑같아요.”

행복이 가득해 보이는 두 사람에게 딱 한 가지 그림자가 있다면 3개월 전에 주영씨의 친정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일이다. 임신 중 모친의 암 진단과 사망 소식을 접한 딸에게도, 결혼 반대에 부딪혔던 사위에게도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었다.

“아내가 임신한 후로 많이 예민해졌어요. 이럴 때 장모님이 계시면 정말 좋을 텐데 몇 달 전에 암으로 돌아가셨거든요. 장모님 건강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는데 이미 말기였어요. 진단 3개월 만에 세상을 뜨셨죠. 임신 중에 소식을 들은 아내가 충격으로 몸이 약해져서 한동안 걱정이 컸어요. 결혼 반대하시던 모습 생각나면서 한편으로는 죄송한 마음도 들었고요. 장모님이 이제라도 편하게 눈 감으실 수 있게 제가 아내를 잘 챙겨야죠.”

새엄마보다 나이 많은 두 아이, 보기 드문 삼혼 가정의 일상 속으로

우여곡절 많은 결혼 생활뿐만 아니라 그는 여러 가지 면에서 꽤나 독특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화가를 꿈꾸며 서울대 미대에 진학했지만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중단하고 입영열차를 탔다. 제대 후에는 어린 시절 봤던 절의 풍경을 잊을 수 없어 3년 동안 머리 깎고 산으로 들어가 단청의 고운 색깔과 조화로운 문양에 푹 빠져 지내기도 했다. 건축에 관심을 가진 후에는 세상의 모든 건물을 직접 보겠다며 3년 동안 100여 곳이 넘는 나라를 여행했다. 경비를 아끼기 위해 노숙을 할 만큼 맨몸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이 시절에 몸으로 부대끼며 배운 감각과 재능은 자녀들의 재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건축 전공한 첫째는 졸업 후 한동안 우리 사무실에서 같이 일했어요. 조만간 독일에 건너가서 공부를 더 할 예정이죠. 둘째는 도예를 배웠는데 일본에서 자동차 디자인하고 있고요. 셋째부터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지만, 일단 지금까지는 아이들이 다들 저랑 비슷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네요. 확실히 아빠를 닮긴 닮았나 봐요(웃음). 엄마도 미술을 전공했으니까 막둥이들도 손재주가 좀 있을 것 같아요.”
이창하는 요즘 김천과학대학 디자인계열 학과장으로 재직하면서 일주일에 두 차례 강단에 선다. 제자들과 ‘러브하우스 공사단’을 만들어 불우이웃에게 집 지어주는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여름에는 대우조선 건축담당 본부장으로 위촉돼 건축가로서의 사업 영역도 넓혔다. ‘이창하디자인연구소’에 이어 일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새로 태어날 식구를 위해 더 커질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생각하면 잘된 일이다. 여섯째 막둥이를 기다리며 본인 나이의 딱 절반인 아내와 알콩달콩 사는 그의 일상, 그러면서도 자신의 분야에서 항상 인정받는 그의 모습은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는 이유만으로 왜곡된 시선으로 보는 분들도 있어요.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상인데 주위의 그런 시각을 접하면 가끔은 당황스러울 때도 있죠. 하지만 우리처럼 살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남들한테 꼭 보여주고 싶어요.”

취재=이한 기자, 사진=원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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