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윤리는 인간종교 「순천」 「인본」이 최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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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동양철학 등 전통사상을 연구해온 원로학자들이 12일 성균관 유림회관 대강당에서 율곡사상연구원 주최로 열린 「범국민 새 생활윤리 학술강연대회 - 인간성 회복을 위한 한국윤리의 재정립」행사에 참가, 복잡한 현대사회 문제해결을 위한 우리사상에 기초한 윤리적·철학적 대응을 논의했다.
이날 행사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동양윤리의 서양문명에 대한 응전」이란 시각에서 현대윤리문제 해결방안을 제시한 김충렬 교수(고려대)의 주제발표였다.
김 교수는 「동양윤리에 있어서 상(변해선 안될 것)과 연(새롭게 적응해야할 것)」이란 주제발표에서 동양윤리의 인문주의를 강조했다.
김 교수는 『동양사회는 서구문명이 밀려오면서 세 가지 충격을 겪고있다』고 진단했다.
첫 번째는 종교적 충격. 동양은 수천년간 자연주의와 인본주의에 기초한 윤리문화 속에서 살아와 종교에 대한 의존이 약했으며 자연을 「만물의 유일한 생명근원이자 생활의 터전」으로 존중해왔다. 그러나 서양종교의 확산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인간을 「구원의 대상」으로 삼아 「신에 의탁해야 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 결과 동양의 인간관·자연관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둘째는 과학주의의 충격. 동양철학의 관심은 「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가」라는 변화·생성의 묘용론으로 분석보다 종합과 생명을 중시했다. 반면 서양과학은 물질구조를 끝없이 분해하고자 하는 분석적·기계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이 같은 서양과학의 물질주의가 동양사회에 만연하면서 동양철학에서 존중하던 삶의 가치가 경시되었다.
셋째는 사회구조의 충격. 동양의 전통농경사회는 일정 공간 속에서 계절적 변화에 맞춰 사는 정적인 삶이었다. 그러나 서구화·산업화결과 생존환경은 공간을 무시했으며, 계절적 자연변화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양보하는 덕보다 냉엄한 법이 강조되며 인간관계는 경쟁과 대립·적대로 변해갔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서구의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동양의 윤리·철학도 바뀌지 않을 수 없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아야 할 것과 변해야할 것을 구분해 대응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동양윤리에서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은 자연의 도덕적 명령을 따르는 순천사상과 인문주의. 즉 자연은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삶의 터전이나 유한하며 쉽게 훼손되기 때문에 자연의 법칙 내에서 절제하며 이용해야한다(애물절용)는 것이다. 또 동양윤리는 곧 인간종교인만큼 인간의 고귀함을 강조하는 인간교육·도덕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한편 동양윤리에서 변해야할 것은 ▲권리보다 의무를 중시하는 사회의식 ▲많은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고 존중하는 민주의식 ▲도덕규범과 자연법칙만 아니라 사회법률도 지킬 줄 아는 준법정신 등이 예시됐다.
김 교수는 이어 보다 구체적으로 현대 윤리문제 해결을 위해 시급한 대처방안을 제시했다. 다섯 가지 제안은▲사회지도층에 등장하려는 인물에 대한 인격적·도덕적 기준강화 ▲사법적 처벌강화(특히 강도살상·가정파괴 등 비인간적 범죄의 가중처벌과 격리)와 범죄예방교육 강화 ▲유치원·국민학교 저학년에서의 전인교육·도덕교육 강화(지식교육보다 중시) ▲종교의 자체정화노력(인간이 종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인식의 재정립) ▲도덕성 회복을 위한 여론매체의 선도와 준엄한 고발활동 등이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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