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하영선칼럼

핵선군주의와 남북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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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북한의 1월은 바쁘다. 3대 신문의 새해 첫날 공동사설을 학습하고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동사설은 올 한 해 북한호의 예상 항로를 가장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지표다. 어설프게 불확실한 대북 정보나 비선조직을 믿고 혼란에 빠지기보다는 지표를 제대로 읽어서 김정일 수령체제의 사고와 행동의 올 한 해 원칙을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매년 새해가 되면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공동사설을 읽는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서 시작한 공동사설 읽기는 역시나 답답함과 안타까움으로 끝났다. 공동사설 읽기는 단순한 글 읽기가 아니다. 현란한 선전어휘를 넘어서서 김정일 수령체제의 머리와 마음의 기본 틀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올해도 1-3-1-1의 기본 틀에는 변화가 없었다. '승리의 신심 드높이 선군조선의 일대 전성기를 열어나가자'는 공동사설 제목에서 보듯이 2007년 수령체제의 기반은 여전히 군사의 논리와 행동원칙이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는 선군주의다. 올해는 특히 과거와 달리 명실상부하게 핵선군주의를 자랑스럽게 강조하고 있다. 다음으로 공동사설은 핵선군사상의 기치 밑에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경제강국.군사강국.정치사상강국의 3대 목표를 점령하기 위한 총진군을 약속하고 있다. 세 번째로 남북한 관계에서 6.15 정상회담 이래 꾸준히 강조해 온 '민족중시.평화수호.민족단합' 원칙을 반복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관계에서 반제국주의 자주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김정일 수령체제가 1-3-1-1 생존전략을 추진하는 한 북한의 2007년 대외정책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렵다. 6자회담 미국대표 크리스토퍼 힐과 북한대표 김계관의 최근 베를린 협의에 따라 곧 열릴 예정인 6자회담에서 북한은 사실상 1990년대 제네바 기본합의와 유사한 영변 핵시설의 동결과 이에 따른 경제적 지원이라는 초기 이행조치를 받아들일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핵 프로그램의 신고와 폐기라는 후기 이행조치는 핵선군 원칙을 포기하지 않는 한 받아들일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은 필사적으로 초기와 후기를 차단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미국은 어떻게 하든 초기와 후기를 연결시키려 전력을 다할 것이다. 회담은 결국 북핵 위기를 최종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교착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평화체제 구축의 틀에서 수령체제의 생존을 보장하고 본격적인 경제지원을 함으로써 북핵 위기를 해결해 보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핵선군주의의 김정일 수령체제가 원하는 평화체제와 반대량살상무기 테러전을 수행하는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평화체제는 협상으로 타협 불가능하다는 것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 핵선군주의를 보장하면서 동시에 핵선군주의를 폐기시키려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북핵 위기 해결의 관건은 선 핵 동결이냐 폐기냐 하는 지루한 싸움에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핵선군주의를 어떻게 개혁개방주의로 변환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을 1-3-1-1 생존전략에서 '핵선군주의'가 아닌 '남북관계 차원'에서 보고 있다. 따라서 북한에 정상회담은 북핵 위기 해결을 위한 게 아니라 경제지원과 북한식 민족단합을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가 정상회담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삼중적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무엇보다 북핵 위기 해결에 기여할 가능성이 없다. 다음으로 핵위기 속의 정상회담은 6.15 정상회담과 같은 국내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연말의 대통령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핵위기 해결 이전의 정상회담은 속 빈 강정처럼 실속도 없이 한.미 관계만 심각하게 악화시킬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남북 정상회담은 정부와 여당을 위해서도 북한 핵선군주의의 변환 이후 추진해야 한다.

하영선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