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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바람」한반도로 불고있다|민족통일연 학술회의 지상중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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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4월9일 통일정책 수립을 위한 전문연구기관으로 출범한 민족통일연구원(원장 이병룡)이 첫 학술회의를 13일 타워호텔에서 갖는다. 전환기의 동북아질서와 남북한관계」를 주제로 한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연구원 박영규 국제연구실장 등 4명이 논문을 발표하고 구종서 중앙일보논설위원, 고병철 교수(미 이리노이대) 등이 토론에 나선다. 다음은 발표논문 중 3편의 요지다. <정리=유영구 기자>

<미소의 동북아정책과 군사질서 재편>한반도 비핵화·군비통제 구체화 확실
고르바초프 등장이후 냉전체제의 와해라는 국제질서상의 근본적인 변화에 따라 아-태 지역에서도 역내국가간의 정치·경제적 관계가 재조정되고 있고 군사적 조절 가능성까지 예견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해온 소련은 아태지역 안보질서 재편과정에서의 주도적 역할확보와 미국의 영향력약화를 모색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전통적인 「소련 위협론」의 변화를 인정하면서도 안보태세의 성급한 변경은 안정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있다.
미소의 동북아 정책 및 현존하는 동북아의 군사질서를 감안할 때 단기간에 재편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선 아시아에는 거대한 미국해군력과 소련지상군이 비대칭적으로 대치하고 있어 미소가 이 지역에서 군축대상병력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기가 매우 어려우며 단기간에 각각의 전략수정조차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은 소련의 아태 안보협력체 구성, 아태지역 비핵지대화 및 해군력 감축 제안 등을 이 지역에서의 미군사력, 특히 해군력 감소와 이에 따른 미국의 영향력 약화를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또 동북아 지역에서는 다양한 쌍무관계를 바탕으로 안보관계가 이뤄져 있어 유럽과는 달리 군사적 조절이 미소간 합의에 의해서만 추진되기는 어렵다.
즉 동북아에서는 미소 외에도 중국과 일본이 또 하나의 군사적 변수다.
게다가 아태지역에서는 아직도 지역분쟁(캄보디아·한반도 등)및 일소간 영토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고 있어 이 지역에서의 다자간 안보협의체 설립이 현재로서는 어려운 실정이다.
더욱이 소련 국내정세의 불투명성(고르바초프 체제 존속 및 페레스트로이카 정책 지속여부)이나 보수화 경향, 그리고 기본적으로 방어위주인 소련 극동군사력 배치 등을 보더라도 소련이 군사질서 재편을 위한 획기적인 양보를 취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이렇게 볼 때 가까운 시일 내에 군사질서가 재편되는 큰 진전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지는 않지만 최근 급변하는 정세가 한국의 안보에는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첫째 한반도의 군비통제문제는 아태 안보체제의 하위체계로 다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동북아국가들의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의견일치추세를 고려할 때 한반도가 군비통제의 우선적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반도는 동북아 및 아태 지역 군비통제를 선도하게 될 것이다.
둘째 앞으로 아태 지역에서의 「군사적 조절문제」에 대한 접근과정에서 한반도의 비핵지대화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가 결정된 상황에서 미국은 고립된 북한에 긴장완화의 명분을 주기 위한 방편으로 이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 소련의 한반도정책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남북 양측에 행사할 수 있는 환경조성에 중점을 둔 것인 만큼 한소 수교에 따라 소련은 자국정책에 대한 한국의 지지·동참을 강요할 것이고 이것이 한미안보관계 유지에 장애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넷째 소련의 이니셔티브가 강화되고 한반도관련 비핵지대화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안보상황이 실질적으로 변화한 것 같은 환상이 너무 빨리 한국 내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으며 이것은 한국의 안보정책수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끝으로 소련의 평화공세 강화 및 한·중, 일·소 관계 증진에 따라 북한의 대남 평화공세가 강화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것이 한국 내에 남북한 관계 개선에의 기대감을 높여 합리적인 대북한 정책 수립 및 그 추진에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유엔가입 이후의 남북한 관계>협력보다 공방 예상…신뢰구축노력 필요
북한이 유엔가입의사를 표명한 외교부 성명으로 볼 때 남북한의 유엔가입은 그 동안 한국정부의 유엔가입 실현노력에 따른 북한의 불가피한 결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73년 이전까지는 한국이 단독가입, 북한이 동시가입을 추진하는 경향이었다.
그러나 73년 이후에는 한국이 동시가입, 북한이 단일 국호에 의한 가입을 주장해왔다.
최근에는 한국이 동시가입과 단독가입을 상황에 따라 병행 추진함에 따라 북한은 동시가입의 반대근거를 상실하기에 이른 것이다.
남북한의 유엔가입을 앞두고 생각해 볼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남북한의 유엔가입이 곧 상호국가승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의 관계에서 나타나듯이 유엔에 가입했다고 해서 유엔회원국이 신가입국을 승인하는 것은 아니다.
73년에 유엔에 가입한 동서독의 경우 유엔가입에 적극적이던 동독은 서독과의 기본조약체결로 「상호승인」이 이루어진 것으로 주장했지만 서독은 동독 승인의사가 없음을 명백히 했고 유엔가입에서도 양자의 입장이 그대로 적용됐다.
그러나 남북한의 유엔가입이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는 계기는 될 수 있다.
이미 북한은 5월20∼22일의 제3차 일·북한수교 교섭회담에서 북한의 관할권이 한반도의 「절반」에 미친다고 인정했고, 이번 외교부성명에서도 사실상 한반도에 두개의 국가가 있다는 현실을 인정한 셈이다.
한편 유엔헌장상 유엔회원국들이 하나의 국가로 결합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동서독·남북예멘·아랍연합공화국들처럼 복수의 회원국이 하나의 국가로 통합됐을 때 유엔사무총장에 대한 통고만으로 자동적으로 회원국지위가 인정됐던 것이다.
둘째 남북한이 유엔에 가입할 경우 유엔헌장상의 목적과 원칙에 따라 여러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유엔회원국은 무력위협 및 행사금지, 분쟁의 평화적 해결, 내정불간섭 등의 의무를 지며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회복을 위해 유엔이 결정하는 각종 원조 및 제재조치에 참여해야 한다.
셋째 남북한의 유엔가입은 유엔내의 각분야 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유엔가입 후 남북한관계는 가입형태에 따라 그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상호합의에 의해 유엔가입이 이뤄질 경우 남북한관계는 평화통일을 위한 여건 조성면에서 한반도의 긴장완화·평화정착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남북한 상호간의 어떠한 합의 없이 유엔에 가입하게 묄 경우에는 협조적 관계를 기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유엔가입 이후에라도 남북한이 상호협조관계에 합의할 수는 있겠으나 이 경우 북한의 태도가 관건이다.
현시점에서 볼 때 남북한은 각각 별개로 유엔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하되 같은 시기에 유엔가입이 실현될 전망이다.
현재로서는 남북한이 유엔가입과 관련, 어떤 합의를 이룰 가능성은 적으며 따라서 유엔 가입 후에도 유엔 내에서 각각 별개의 활동을 전개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북한이 고려연방제통일방안의 수정가능성을 제시하고 한반도의 「절반」에 대한 관할권을 인정하는 등 이전에 비해 상당한 태도변화를 보이고는 있지만 북한이 유엔내에서 한국에 대해 공세적 태도를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 유엔가입을 한반도의 평화공존체제를 구축하는 계기로 삼는 동시에 평화통일실현의 여건조성을 위해 북한과 견해차를 좁히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북한의 대미·일 관계개선과 남북한관계>남 실상 알게돼 북체제 비판 싹틀 수도
북한은 일본·미국이 요구하던 유엔동시가입을 수락했다.
북한이 미군의 핵무기를 한반도에서 철거하는 조건으로 핵사찰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이 문제가 해결되면 북-일, 북-미 관계는 개선될 수 있다.
이 같은 관계발전이 남북한 관계개선에 어떤 영향을 줄지가 우리의 관심사다.
단기적 입장에서 보면 반드시 긍정적일 수만은 없다.
북한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체제의 유지와 정권의 순조로운 계승이며 통일은 이후의 문제다.
유엔가입과 같은 중요한 결정도 79세인 김일성이 후일 김정일에게 짐이 될 수 있는 문제를 미리 해결해 주려는 의도에서 행했으리라고 생각된다.
미국이나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꾀하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특히 일본이 급히 서두르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일본은 급변하는 동북아정세에 대비, 이 지역에서 주도권을 장악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중국이 데탕트를 추구하면서 상해공동선언을 발표할 때도 조용히 있던 일본이 서둘러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선언하고 중국에 경제지원을 약속, 외교정상화를 이뤄냈다.
둘째 일본의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는 크게는 국제질서 재조정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지만 작게는 앞으로 한국을 다루는데 유리한 입지를 마련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셋째 지금까지와 같은 북한과의 외교관계 미 수립은 자국민의 보호에도 지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적 고립과 경제문제가 북한으로 하여금 남북한 관계개선에 응하게 하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있고 한국·미국정부는 북한을 국제사회에 끌어들이고 문호를 개방시키면 독일식의 통일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일본의 북한에 대한 경제·기술원조는 이 같은 과정에 쐐기를 박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일본으로부터 경제·기술원조를 얻고 미국과 협상해 북한에 묻혀있는 6·25전쟁 때 실종된 8천구 이상의 미군유해를 돌려주고 그 대가로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북한이 일본으로부터 도입한 기술로 생산한 상품과 저렴가의 보세가공품을 방대한 미국시장이나 후진국에 수출할 수 있다.
또 북한은 일본의 경제원조와 미국산 곡물을 이용, 알콜 에너지개발에 박차를 가해 군사연료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북한이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고 경제발전을 이루면 체제에 위협적인 개방을 하지 않으면서도 김일성·김정일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정부 입장에서는 일본의 행위가 남북한 관계개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 앞으로 계속 일본·미국정부와 대북한 관계를 협의, 조절해야 한다.
만일 이것에 실패하면 남북한간의 냉전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북한의 대미·대일 관계개선은 남북한 관계개선에도 도움을 준다.
첫째 북한이 미일의 경제원조를 받는 과정에서 인적교류가 불가피하며 중국식 개방을 추구하더라도 사람이 왕래하면 「개방적」으로 될 수 있다.
둘째 북한이 저렴한 가격의 상품을 미국시장에 판매하면 자연히 자유분방한 해외동포들과 잦은 교류를 갖게되며 결국 주민들이 한국의 실상을 올바로 알게되고 자기체제의 비판에 눈을 뜨게 된다.
셋째 북한주민들이 해외진출과정에서 국제관행을 배워 호전적 태도를 수정하게 될 것이다.
결국 북한의 대미·대일 관계개선이 남북한 관계의 개선에 도움이 되도록 우리가 정책적으로 유도해야겠다.
이는 정권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차원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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