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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위협하는 두 세력(권영빈칼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그가 1년만에 출옥했을때 조직은 그를 받아들였고 조직원의 자격으로 연인을 찾을 수 있는 허가를 받는다. 조직의 안가인 아파트는 강남에 있었다. 『3층을 올려다 보았다. 붉은 수건이 걸려있거나 아무것도 없으면 비상이니 그냥 돌아가야했다. 베란다 철책에는 하얀 수건 한장이 걸려 바람에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안전하다는 뜻이었다. 한번 한번 다시 두번 약조된 신호대로 벨을 눌렀다. 진숙은 기다렸다는 듯 거기 있었다.』
마치 첩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키기는 이 글은 최근 발간된 노동운동가이며 작가인 안재성의 자전적소설 『사랑의 조건』에서 인용한 대목이다.
작가 안재성은 80년 강원대 3학년시절 제적당하고 포고령 위반으로 구속 석방된 다음부터 본격적 노조활동에 참여하면서 청계피복,광산지역노조를 거쳐 지난해 울산 현대중공업 파업에 가담한 「숨은 전사」였고 지금도 노조운동에 투신중이라는 이력을 달고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YH여공사건을 계기로 노조운동에 참가하면서 친구의 도움을 받아 사회주의 학습에 열중한다. 그는 운동의 단련과 학습의 연마를 거치면서 사회주의만이 현실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에 이른다. 이후 그는 완벽한 유물론자가 되어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구로공단에서,광산에서,파업현장에서 한치의 흔들림없이 이론가로서,선동가로서,지하핵심세력으로서 활동한다.
『자 이제/죽음을 각오한 사람은/오른쪽으로/감옥을 각오한 사람은/왼쪽으로/노래를 부른다…/죽음을 각오한/네명의 동지들이 오른쪽으로/뚜벅뚜벅/나섰다/“나는 투신하겠다!”외치는/동지들을 말리기 위해/세명의 보호조가 나온다… 부당징계 철회하라!/외치며 온몸에 신나를 붓는다/경동의 최후결단식!/그것은 눈물바다였다/불바다였다』
인용한 시는 89년 경동산업 파업투쟁을 고취키위해 민족문학 작가회의 소속의 시창작 2분과가 진체창작형식으로 쓴 운작시의 일부다. 이어지는 시는 쇳가루 기름밥으로 자란 강철같은 노동자의 몸은 설령 불을 지핀다해도 절대 타지않고 오히려 착취의 불길을 삼킬뿐이며 마지막 「그대 착취의 세상을 사르고」에서는 비록 노동자의 몸이 불에 탄다고한들 그 작은 불은 만국 노동자의 횃불이 되어 노동의 착취를 불사르고 노동해방을 가져오는 큰 횃불이 될 것임을 약속하고 있다.
2편의 시와 소설이 곧 어둠의 세력을 대표하는 문건이라는 뜻에서가 아니라 이들 문학이 상정하는 이념과 분위기를 통해 이른바 민주화세력속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을 노동운동권 핵심세력의 이념과 행동양식을 유추하기 위한 단서로 제시키 위함이다.
마치 첩보원처럼 조직의 명령에따라 움직이고,마치 독립운동가 열사처럼 제몸에 불을 지펴가며 목숨 건 투쟁을 벌이는 이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노동의 해방과 사회주의 혁명이다. 이들에게 있어 자본주의·자본가·정부·경찰은 투쟁전복의 대상이 될 뿐이다. 법·질서·공권력은 노동해방을 탄압하는 도구이고 장치일뿐이다. 그런데 이들이 민주화 세력임을 자처하고 있다. 노사분규 현장에서,학생시위 한가운데서,때로는 배후세력으로,때로는 핵심세력으로 군림하면서 어둠의 철옹성을 쌓아왔다고 본다.
우리 사회를 혼란과 불안으로 몰아가는 폭력의 주체는 하나가 아닌 둘임을 이미 필자는 지적한 적이 있다. 시들어가는 학생시위에 불길을 댕기며 강한 권력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는 운동권의 핵심이 그하나라면,강한 권력만이 침체된 경제력을 살리고 범죄와 폭력을 막을 수 있다고 권위주의 시절의 향수를 부추기는 회귀세력이 또다른 위기현실의 주범임을 우리는 4년째의 민주화 갈등속에서 해마다 확인해온 것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회귀세력이란 주체가 있고 가시적이며 비판과 견제의 대상이 될 수 있음에 비해 어둠의 세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철옹성을 쌓고 도덕성과 민주화로 위장하고 있다. 세력의 규모,조직의 움직임이 철저히 봉쇄된채 없는듯 존재하고 있는 실체,이것이 어둠의 세력이라고 판단한다.
잇따른 분신 자살뒤에는 이를 충동질하는 어둠의 세력이 존재할 수 있다는 서강대 박홍 총장의 발언은 바로 일부 노동운동권 세력의 이런 분위기를 거론한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으며 10년 가까운 세월을 감옥에서,운동권의 우상으로 추앙받던 시인 김지하가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 치워라」고 질타한 까닭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어둠의 세력에대한 이러한 지적과 경고는 분명 진정한 민주화세력과 어둠의 세력을 분리시켜 민주화에대한 국민적 합의와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데 큰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폭력과 혁명을 민주화와 격리시킴으로써 민주화의 참 모습을 정착시켜야 하기때문이다. 이른바 민주화를 표방하는 세력이 진정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겠다면 지금 당장 착수해야할 일은 어둠의 세력과의 모든 고리를 과감히 끊는 작업이다. 그 고리를 끊지 않는 한 공안세력에 대한 비난과 비판을 할 자격도,명분도 그들에겐 없게 된다.
4년째의 민주화 갈등을 반복하면서 지금 우리가 확인할 소중한 경험은 두개의 폭력,즉 권위주의 회귀를 위한 공안세력과 노동의 해방·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어둠의 세력이 곧 반민주적 갈등과 소모적 극한 대립의 주역이라는 인식과 이 두 세력의 추방없이는 민주화란 불가능하다는 합의일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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