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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석학들, 미국 권력에 의문 던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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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오늘의 세계적 가치

브라이언 파머 외 엮음, 신기섭 옮김, 문예출판사, 352쪽, 1만5000원

미국 하버드대 종교학과의 브라이언 파머 교수는 2001년 '개인의 선택과 전 지구적 변화'란 강좌를 개설했다. 세계적 석학과 유명 인사 등을 초청해 학생들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강좌는 인기를 끌었다. 책에는 그중 16개의 인터뷰 기록이 정리돼 있다.

석학들은 미국이 휘두르는 권력에 의문을 제기한다. 하워드 진은 "엄청난 재앙을 막기 위해 소규모의 제한적인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 전쟁이나 이라크전은 이런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외교를 통한 해법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문학자 일레인 스캐리는 한국 전쟁은 물론 베트남 전쟁 등 일련의 국제전에서 법적인 선전포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국제적인 테이블에서 결정이 난 사안을 따르는 게 고상하고 세계주의적이리라 여기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국제 공동체란 한 자리에 기껏 20명이 모인 것 뿐이라는 것. 그래서 각국 지도자는 미국을 지지하지만 그 나라 국민의 80%는 반대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빈국이던 아이티가 자발적인 민주주의를 이룩하려던 찰나, 자국이 미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자 아이티 경제 제재를 감행한 미국을 맹비난한다.

강의는 '자본의 신(神)'에 대한 경각심도 일깨운다. 신학자 하비 콕스는 어린이를 마케팅 대상으로 삼는 심리학 연구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학자 라니 구니어는 돈 많은 집 자제들이 좋은 대학을 독점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상위권 146개 대학 학생의 단 10%만이 소득 하위 50% 계층 출신이다. 입학 성적이 좋다고 해서 대학 학점이 높을 확률은 14%에 불과했다. 오히려 내신성적과 학점의 상관관계가 높았다. 교육 혜택을 당연히 여기는 백인 중산층 학생과 달리 소수자인 '가난한 흑인 여학생'은 배울 기회를 얻은 걸 가장 감사히 여겨 열심히 공부하고 사회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단다.

이렇게 뭔가 불합리한 세상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법학자 미사 미노는 법대에 가지 말고 시나리오나 소설, 기사를 쓰고 록 비디오를 만들라고 한다. 사람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파머 교수는 2004년 6월, 하버드대와 계약을 연장하지 못했다. 그러나 책은 남았다. 시대를 고민하는, 양심이 살아있는 대학생들의 책꽂이에 어울릴 책이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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