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독일병 우려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한국 경제가 우려해야 할 것은 일본병(病)이 아니고 독일병입니다."

사공일(사진)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18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열린 '제32회 코리아 리더스 포럼'의 주제 발표자로 나서 한국 경제를 조목조목 진단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월례 조찬 세미나 모임은 공학한림원이 주최하고 중앙일보가 후원한다. 이날 주제는 '융합 시대의 국가 경제 전략'이었다. 이날 패널 토론자로 참석한 김광두 서강대 교수는 "외국 기업과 우리 기업 간의 경쟁관계에 초점을 맞춰 문제를 봐야 하는 글로벌 시대에 주로 국내시장의 관점에서 정책을 펼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을 고민해 봐야 할 때"라고 밝혔다.

다음은 사공 이사장의 주제 발표 내용.

일본식 장기 불황과 독일식 장기 침체는 증상은 비슷하지만 원인과 내용이 다르다. 금융 부실에서 발생한 일본병과 달리 독일병은 경직된 노동시장, 지나친 정부 규제, 과다한 사회복지에 기인한다. 한국 경제는 상당 부분 독일 정부가 위기를 절감한 쪽으로 향하고 있다. 독일병은 독일인들도 감히 빠져 나오지 못할 정도로 구조화돼 있다. 독일은 1990년 후반 이후 1%의 성장률을 보여 왔다.

우리나라도 유연하지 못한 노동시장, 변하지 않은 정부 규제, 갈수록 커지는 사회복지 부담 등으로 독일병의 단초를 엿보게 한다. 독일병을 뿌리치면서, 동시에 세계화 추세를 거스르지 않는 정책은 우선 '기업 하기 좋은 여건'을 갖추는 일이다. 현재의 노사 갈등과 지나친 정부 규제는 기업들이 한국을 고집할 이유가 없게끔 만든다. 이번 현대차 사태에서도 드러났듯 법을 어기는 행위를 용납하는 사회 분위기가 노사 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최근 하이닉스반도체의 경기도 이천 공장 증설 문제도 정부의 지나친 규제와 관련됐다. 세계화 시대에 정부가 국토 균형발전을 내세워 공장을 지방에 증설하라고 하면 기업들이 말을 듣겠는가. 중국이나 동유럽으로 갈 것이다. (이날 포럼의 진행을 맡은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중국에 공장을 짓겠다고 하면 지방정부가 앞장서 길 닦아주고, 공짜로 땅 빌려주고 건축 신청 다음날 허가가 나온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의 일관성 부족도 문제다. 경제를 책임지는 장관이 너무 자주 바뀌다 보니 경제 관리들도 자주 교체돼 문제다. 대통령이 자신의 뜻과 맞는 경제팀을 구성해 자주 만나면서 임기 내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이는 대통령 책임제의 장점을 스스로 포기하고 의원내각제의 단점을 답습하는 꼴이다.

심재우 기자

◆사공일(67) 이사장은=서울대 상대를 나와 미국 UCLA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재무부 장관 등을 지냈다. 현재 고려대 석좌교수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세계 속의 한국 경제' 등이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