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한국 떠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지난해 외국인의 국내 직.간접 투자가 모두 유례없이 큰 폭으로 뒷걸음질 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직접-간접 투자가 일제히 급감세로 돌아선 것은 정치.사회적으로 불안했던 1982년 이후 24년 만이다.

외국인 투자가 썰물처럼 빠지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의 수급에 큰 영향을 받는 국내 자본시장은 물론 실물경제에도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외국인의 국내 투자 위축세가 올해 더욱 심화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돌출한 현대차 부분 파업 사태로 한국의 전투적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밀어내기식'해외투자를 유도하고 나선 것도 적지 않은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 투자처 매력도 상실=1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외국인의 국내 직접투자는 18억6470만 달러에 그쳤다. 전년 같은 기간(52억9200만 달러)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월 평균 외국인 투자 증가세를 감안하면 2006년 전체로도 외국인 직접투자 액수는 20억 달러를 간신히 넘길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17억7580만 달러를 기록했던 1995년 이후 11년 만에 가장 적은 규모다.

직접투자 감소 추세의 모양도 좋지 않다. 이달 5일엔 세계 최대 반도체 메이커인 인텔이 경기도 분당에 있는 한국 R&D센터의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이 연구소는 정부가 '글로벌 IT기업 R&D센터 1호'로 유치한 곳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 연구위원은 "외국계 R&D센터만 해도 2000년 한 해에만 175개나 늘었지만 이후 계속 줄어 2004년엔 오히려 10개나 순감하는 등 그나마 우위를 갖고 있다고 여긴 기술 투자처로서의 매력과 경쟁력도 급격히 잃고 있다"고 우려했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태미 오버비 수석부회장은 "과격한 노사분규와 정부의 경직된 투자 정책 등으로 외국인의 한국 투자가 주춤해진 상황"이라며 "현대차 노조의 불법 파업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의 시각이 더욱 싸늘하게 돌아서고 있다"고 말했다.

?자본시장 투자도 발 빼나=국내 자본시장을 통한 증권.채권 등 외국인 간접투자 역시 지난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현재 외국인의 국내 간접투자 현황을 보여주는 지표인 국제수지상 포트폴리오 투자는 2005년 말 대비 15억9690만 달러 순유출을 기록했다. 이 기간 외국인들이 국내 채권을 76억5600만 달러어치를 사들였지만 동시에 이보다 더 많은 국내 주식(92억5300만 달러 규모)을 팔아치웠기 때문이다.

이는 한은이 외국인 간접투자 유출입 집계를 시작한 80년 이후 가장 많이 빠져나간 것이다. 외국인 간접투자가 순유출로 돌아선 것도 외환위기 당시인 98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다.

LG경제연구소 오문석 상무는 "외국인의 투자는 한국 경제에 대한 매력과 잠재력을 반영하는 지표"라며 "해외투자 확대 방안과는 별로도 외국인 투자 급감을 막을 대책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표재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