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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폭행/공권력 대공세 부를듯/시국에 어떤 영향 미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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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학생들 반인륜 행위에 여론비난 집중/방학겹쳐 운동권투쟁열기 약화예상
외국어대생들의 정원식 국무총리서리 폭행사건은 강경대군 치사 사건이후 계속된 시위정국에 충격과 함께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파장을 몰고올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건국이래 국무총리에게 가해진 학생들의 첫 집단폭행이며 강의중인 교수에 대한 중대한 교권침해이자 반인륜적·반도덕적 행위라는 점에서 여론의 비판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당국은 이번 사건을 「학생운동권이 사회혼란과 공권력의 권위실추를 겨냥해 저지른 계획적인 범죄」로 규정하고 있고 경찰도 같은 차원에서 관련자 전원에 대한 검거에 나섰다.
학교측도 총장이 국민과 정부에 사과하는 한편 관련 학생 전원을 학칙에 따라 제적등 가장 무거운 처벌을 내릴 방침이어서 학원가에 일대 회오리가 예상되고 있다.
정부당국으로서는 무엇보다도 이 사건이 학생회 간부들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강군사건이래 학생 및 재야운동권의 공세에 밀려 무력화 현상을 보였던 국가공권력의 권위와 힘을 회복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은 당국이 고심해온 성균관대생 김귀정양의 부검과 전민련사회부장 김기설씨 유서대필용의자 강기훈씨 연행을 위한 공권력투입 문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검찰은 그동안 김양시체에 대한 압수수색영장과 강씨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놓고도 장소가 특수성이 있는 병원과 성당인점을 감안,공권력 투입을 미뤄왔다.
특히 김양문제는 학생·재야운동권으로부터 과잉진압에 의한 사망이라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영장 1차기일이 지나도록 부검을 못하고 있어 큰 부담으로 작용해왔다.
또 강씨 사건의 경우 유서대필혐의를 잡아놓고도 신병확보가 안돼 재야와의 공방이 계속되는등 공권력의 한계를 절감해야 했다.
검찰이 두 사건에 대한 공권력투입을 유보해온 것은 사실 장소의 특수성보다는 강군 사건이후 계속된 시위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한 학생·재야운동권의 막강한 결속력때문이었다.
또 강군치사이후 권창수씨,김귀정양 사망등 과잉진압과정에서 빚어진 사건이 거듭되면서 공권력남용에 대한 국민의 비판적 여론이 형성됐던 것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다.
법집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권력 행사마저도 유보할 수 밖에 없었던 당국으로서는 정총리서리 폭행사건이야말로 수세에서 적극적인 공세로 국면전환을 시도할 수 있는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사건발생직후 노태우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지체없이 사건의 철저한 수사와 관련자엄중문책을 거론한 것은 이같은 분위기의 반영으로 보여진다.
이에 따라 당국은 이번 사건이 공권력에 대한 정면도전과 스승에 대한 반인륜적 폭행이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김양 및 강씨사건에 대한 공권력투입을 정당화시켜주는 여론조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론을 등에 업고 충분한 명분을 확보했다고 판단될 경우 당국은 김양·강씨사건의 조기종결을 통해 6월투쟁의 이슈를 소멸시키는 「대공세」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범국민대책회의를 중심으로한 재야로서는 이 사건의 본질이 공안통치 강화의 상징인 정총리서리에 대한 공격이었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국민대회등 잇단 집회·시위를 통해 강력히 맞서려하겠지만 과연 불리해진 국면을 어떻게 전환시킬지는 미지수.
뜻밖의 돌연변수로 여론이 바뀐데다가 시기적으로 대학의 방학과 광역선거 등이 다가오고 있어 투쟁의 열기는 크게 약화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또 지명수배됐거나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핵심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선풍이 일것으로 보여 재야의 활동영역과 입지는 크게 축소될 전망이다.
정총리서리 폭행사건은 이와 함께 학생운동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이 사건이 국민의 전통적인 윤리관념 과정에서 정면으로 배치됨으로써 지금까지 학생운동권이 쌓아왔던 도덕적 순수성을 훼손시켰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비교적 관대하게 받아들여져 왔던 전대협을 중심으로한 학생운동의 과격성이 엄격한 비판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법적·제도적으로 제동이 걸려 전대협출범이후 최대의 시련을 겪게되면서 학생운동의 전환점이 될 가능성도 있다.
대학이 화염병과 폭력시위의 성역,체제전복을 위한 전초기지로 이용돼왔다고 보는 당국으로서는 앞으로 학내 시위와 폭력사태 발생시 교내에 경찰병력을 투입하거나 아예 상주시키는 등의 강경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높다.
학생운동권에서 폭행사태를 얼마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도 관심거리.
학생들은 비록 「전교조탄압 주역에 대한 응징」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스승에 대한 폭행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는 여론을 결코 외면할 수 만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전대협 또는 외대총학생회 차원에서 잘못을 모두 시인하고 비폭력노선을 천명한다면 사태의 파장은 의외로 쉽게 가라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로서도 학생들의 실수 또는 과오에 편승해 운동권 전체를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오히려 더 큰 저항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그것은 현시국의 불안정한 구조가 공안통치와 물가·집값폭등등 민생부분의 실정에 기인하고 있어 문제제기그룹의 탄압이라는 대증요법만으로는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도 학생들못지 않게 이번 사건이 발생하게된 동기와 배경을 냉정히 음미하고 합리적인 처방을 내려야 할 과제가 주어진 것으로 보인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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