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는 직업, 무조건 이겨야|해태 김응룡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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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1백㎏이 넘는 (?) 거구에다 말이 적어 답답함마저 느끼게 하는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 김응룡 (50) 감독. 마운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이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 「코끼리」다.
「코끼리」 김 감독이 올 시즌 들어서는 번트에다 치고 달리기를 가미하는 등 재주넘기를 시도하고 있고 프로 통산 5백승을 달성한 후에는 눈물까지 흘리는 섬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코끼리」 김 감독의 변모가 아닐 수 없다.
91시즌 개막 이후 줄곧 해태를 선두로 이끌며 여섯번째 우승을 노리는 김 감독을 「스포츠 초대석」에 초대했다.
-9년째 해태에만 계속 있는 이유는.
▲인연 때문인 것 같다. 옮겨다니면 계약금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을 물론 알고 있다. 그러나 해태는 여러모로 나에게 의미가 있는 팀이다. 4연패도 그렇고 5백승도 그렇고. 구단과 선수들이 나를 믿어주는 한 계속 있을 생각이다.
-도중에 다른 팀으로부터 입단 교섭은 없었는지.
▲간접적인 이야기는 몇번 있었지만 구체적인 교섭은 없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성격상 옮겨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시절에도 한일은행에만 20년 내내 있었다. 한 팀에 오랫동안 있으니 여러 가지 좋은 점이 많다. 이제 선수들과 구단생리까지 완전히 파악했다. 특히 선수들은 아침에 얼굴만 잠깐 보아도 그날의 컨디션을 다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강공으로 밀어붙이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는 김 감독이 최근엔 안하던 번트도 시도하는데….
▲솔직히 말해 예년에 비해 타격이 좀 약해졌다. 부실해진 방망이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번트와 같은 세기도 겸하려 하고 있다.
-올해 우승을 장담했는데 껄끄러운 상대는.
▲젊고 패기 있는 빙그레, 선수층이 두터운 삼성, 기동력과 타력이 좋은 LG등이다. 그리고 올해 해태 킬러로 등장한 태평양도 거북한 상대로 생각된다.
-태평양의 박영길 감독과는 각별한 사이로 항간에서는 최근 해태가 태평양에 연패 (올 시즌 2승6패)하는 이유가 봐주기 때문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경기장에서 만나면 적이 아닌가 (웃음).
-해태 야구의 강점은 무엇인지.
▲프로는 이겨야한다. 이기기 위해서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해내고야 말겠다는 근성도 그에 못지 않게 필요하다. 해태 감독으로 좋은 선수들을 많이 만난 것은 내 개인적으로 행운이었고 거기에 나는 근성을 길러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경기 일정이 너무 빡빡해 선수들에게 무리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나는 83년부터 경기 수를 늘릴 것을 계속 주장해왔다. 올 시즌 야구가 진짜 프로야구다. 시즌 중 쉬는 날이 많으면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해이해진다. 다소 힘들지는 모르겠지만 기록과 기술 향상을 위해 게임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프로가 무엇인가, 프로는 직업이다. 프로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야구 외에 특별한 취미가 있는지.
▲테니스를 즐긴다. 아마 우리 동네 (방배동)에서는 내 실력이 제일 나을 것으로 알고 있다 (웃음).
-프로야구 감독이 화려한 직업임에는 틀림없지만 애환이 많으리라 생각되는데.
▲야간 경기가 끝나고 30분쯤 후 경기장을 둘러 보라. 불과 몇분전의 환호와 야유가 언제 그랬느냐 싶게 고요한 적막만 감도는 그라운드를. 승패를 떠나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허탈감…. 바로 그러한 것이 감독들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하는 느낌이 될 것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가정에서도 0점 남편. 0점 아버지다. 동계 훈련기간까지 포함하면 1년 중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석달도 채 되지 않는다. 아내에게도 미안하지만 미국에 유학 보낸 두딸 (혜성·17, 인성·15)에게도 아비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아 항상 죄스러울 뿐이다.
경기도 그렇다. 한 게임 한 게임 피가 마른다. 이길 때가 있으면 질 때도 있게 마련이겠지만 9년 째 감독을 맡고 있는 지금까지도 패한 날이면 제대로 마음 편히 잠잘 수가 없다. 이길 때도 승리의 기쁨은 잠깐일 뿐 하위 팀의 추격이 숨통을 죄어오는 것 같다. <박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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