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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돌 흰 돌] 시드는 아마바둑 … '준프로' 연구생 출신이 싹쓸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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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바둑이 언제부턴가 시들하다. 대회가 열리면 수백명이 북적이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1백명 정도로 조촐하다. 광주의 조민수, 대구의 이학용 등 지방마다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있던 맹주들도 요즘엔 이름을 들어보기 어렵다. 서중휘.이강욱등 연구생 출신의 젊은 강자들이 아마바둑계를 휩쓸어버린 탓이다. 이들 연구생 출신의 실력이 발군이다보니 웬만한 아마추어는 참가조차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한국바둑계의 구조적 모순이 아마바둑마저 고사시키려 하고 있다. 연구생제도는 일본을 꺾고 세계를 제패하기 위해 한국기원이 도입한 엘리트 양성제도다. 연구생은 1백명, 1조에서 10조까지 각 10명이 있고 그 뒤로 대기생이 끝없이 이어져있다. 이들 중 8명이 매년 프로가 된다. 만약 18세까지 프로가 되지 못하면 연구생에서 퇴출당한다.

말하자면 현행 아마강자들이란 18세를 넘겨 연구생을 떠난 준 프로들인 셈이다.

입신(入神)이라 불리는 9단들조차 연구생 1조와 겨루면 승률이 50~60%에 그친다. 바둑계에서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TV 해설자로 더 유명한 김성룡8단은 "9단들도 새로 입단대회를 통과하기는 만만치않다는 얘기죠"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입단대회를 통과하려면 연구생 1, 2조의 실력자들끼리 대국해 7승2패는 해야 하는데 60% 승률로는 미달 아니냐는 해석이다. 그래서 18세까지 프로가 되지 못한 연구생들이 아마바둑계로 몰려들고 이들이 아마바둑을 휩쓰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과거처럼 따로 직업을 가지고 바둑은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대회에서 입상하는 모습은 요즘엔 눈을 씻고봐도 찾을 수 없다.

프로로 가는 길이 너무 좁다. 지나친 병목현상을 빚고 있다. 모든 문제가 여기서 발생한다. 아마바둑이 아마추어다움을 상실해가는 것도 이 병목현상의 반작용이다. 바둑 지망생들이 늘어나면 거기에 맞춰 프로의 문을 넓혀야 한다. 계속 바늘구멍으로 만들어놓는다면 결국은 지망생들이 떠날 것이고 바둑은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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