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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 투명성 확보가 중요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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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지난 11일 발표된 부동산 안정대책은 민간 아파트로 분양가 상한제와 분양원가 공개를 확대하고 청약가점제를 통해 수요자를 철저하게 줄 세우는 등 규제 강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와 여당, 여당 내의 의견 충돌 등 부동산 문제가 정치 및 이념 대결 차원으로 비화된 끝에 나온 결론이다. 원칙적으로 민간기업이 생산하는 물건에 대해 원가를 공개하라는 것은 회사의 기업비밀을 내놓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택이 땅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이용하는 특수성이 있으며, 또 주택은 공공재로 봐야 한다는 주장에 따른 것이지만, 가전제품이든 자동차든 모든 상품에 필요한 자원은 유한하다. 또 서민주택이 아닌 호화 주상복합 아파트까지 공공재로 보는 것이 타당한지도 의문이다.

정부도 반대한 민간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정치권이 이처럼 끝까지 밀어붙인 배경은 원가공개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도가 높아 표로 연결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경제 기본질서에 어긋난다거나 실제로 원가공개가 집값 낮추기에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많다는 경제 부총리 및 전문가들의 주장은 이 같은 국민 정서에 기댄 포퓰리즘 앞에서는 설 자리를 찾지 못한 셈이다.

그렇다면 많은 소비자나 시민 단체가 옷이나 자동차,휴대전화 등의 원가 공개는 요구하지 않으면서 유독 아파트 원가 공개를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비싼 집값으로 인한 불만에 더해 오랫동안 쌓여 온 건설업계에 대한 불신이 주 원인이다. 정치권 비자금 제공의 온상이라거나 블랙홀 등으로 지칭되는 건설업체가 얼마나 많은 부당 이익을 챙기고 있겠느냐는 의심의 눈초리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건설업계는 나름대로 억울함을 호소한다. 비싼 분양가는 주로 땅값 때문이며 지역에 따른 분양 상황의 차이로 인해 회사가 폭리를 취할 여지가 없다는 주장이다. 즉 미분양이 많아 손해를 보는 지방과 수도권 지역에서 남는 이익을 상쇄하면 이익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는 건설업체의 이 같은 주장을 소비자가 믿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건설업체가 그동안 소비자에게 신뢰를 줄 만큼 투명한 경영을 하지 못한 데 기인하는 부분이 크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 간 차이에 따른 수익성 상쇄는 수도권 주택소비자가 지방 소비자의 분양가격 일부를 떠맡는다는 의미로 이에 대한 소비자의 동의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부당한 일이 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건설업계는 이번 기회에 자발적으로 건설 프로젝트의 투명성을 확보해 소비자의 의혹을 불식시키는 계기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건설업 스스로 투명성을 확보한다면 기업 비밀에 해당되는 원가 공개의 부당성에 대해서 당당히 맞설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국내 건설업은 글로벌 스탠더드와 거리가 멀다. 일괄적인 발주제도뿐 아니라 일반건설업과 전문건설업의 복잡한 업역 구분,다단계에 걸친 하도급 관행 등 투입비용을 제대로 계산하기조차 어려운 경우도 허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다 보니 선진국에 비해 건설비도 비싸졌고, 건설 공기도 길어진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국토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 국가계약법이 정하고 있는 일괄 발주가 아니라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처럼 분할발주를 통해 전문건설업체와 직접 계약을 할 경우 10~15%의 원가절감이 가능하다고 한다. 또 분할 발주를 할 경우 각각의 비용이 정확하게 계산되므로 굳이 원가 공개를 하지 않아도 원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쉽다.

이 같은 건설업 선진화에는 정부의 선도적 노력이 필수적이다. 경직된 발주제도나 업역구분,하도급 관행 개선 등에는 정부가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원가공개 같은 시장경제의 기본을 훼손하는 대책보다는 건설산업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끌어 올려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투명성을 지닌 첨단산업으로 변신시키는 노력부터 기울이는 것이 순서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원활한 주택수급을 통해 주택가격 안정에 도달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혜경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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