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서 경제블록 모색|격변하는 아시아 정치·경제정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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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아시아가 미·소·중·일 등 강대국들의 경제 「다극외교」중심이 되고있다.
이와 관련해 아시아 각국은 자구책으로 경제에 초점을 맞춘 국가발전계획이나 경제 블록 형성을 신중하게 모색하고있다.
태평양을 끼고있는 동아시아에서는 냉전후의 신시대를 겨냥한 지역·경제권 구상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예를 들면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제창한 「동아시아경제권(EAEG)」구상, 홍콩과 중국남부를 중심으로 한 「화남경제권」구상,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한 「성장의 삼각지대」구상 등이다.
거기에다 한국·일본·중국·소련까지 포함한 「환 동해경제권」구상이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이달 발표한 자료를 보면 구미지역에 불황의 그림자가 비춰지던 지난해 한국·대만 등 아시아신흥공업경제지역(NIES),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등은 2, 3년전에 비해서는 다소 주춤하긴 했으나 그래도 6∼7%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과시, 성장주도지역임을 입증했다.
냉전 후 강대국들의 눈이 아시아로 집중되고 있는 최대 원인은 이러한 아시아의 경제적 실적과 잠재력 때문이다.
지난 4월17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방일 중 행한 일본국회연설에서 「아시아·태평양안보구상」을 내놓았다.
그는 또 『극동 및 시베리아경제를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형성되고 있는 경제복합체에 연결시키는데 관심을 갖고있다』고 발언, 정치·경제면에서의 아시아중심 정책을 천명했다.
그러나 아시아 각국들은 정치적 문제보다는 경제적 협력방안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있다.
태국 타마사트대학의 추라치프 동아시아 연구소장은 『아시아는 유럽과 같이 조약을 바탕으로 한 집단안보체제에는 익숙지 않다. 유일한 원리는 경제적 번영과 공존이라고 지적, 아시아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그렇지만 분명히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신 사고외교」전개는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구도를 해소하고 아시아국가간의 「탈이데올로기화」를 가져다주며 경제면에서의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즉 「군비경쟁과 대립」의 시대가 대화를 기조로 하는 「경쟁과 협조」의 시대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소련이 한국과 수교하고 고르바초프가 제주도에서 노태우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것과, 자유중국이 대중국 적대자세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대립」에서 「경쟁과 협조」로 전환하는 아시아 국제정치기류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북한이 일본과 수교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소련이 ASEAN외무장관회의에 참여하려는 의사를 분명히 하는 등 남태평양지역국가도 최근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중심에 놓여있는 셈이다.
미국은 동아시아지역에서의 기득권에 대한 소련의 도전을 은근히 견제하면서 기존우방들과의 우호를 다지는 한편 아직도 「냉전의 그림자」가 가시지 않은 캄보디아문제해결과 베트남과의 국교정상화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4월9일 솔로몬 미 국방차관보는 캄보디아평화문제와 연결시킨 4단계 대베트남 국교정상화안을 제안했고 20일에는 베트남전쟁 중 행방불명된 실종미군 수색을 위한 잠정사무소를 하노이에 개설하는데 합의했다.
이밖에 중국도 ASEAN에 대한 접근을 강화, 오는 6월 양상쿤 국가주석이 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와는 대조적으로 인도·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는 아직도 최빈국에서 허덕이고 있다.
인도 간디 총리 암살과 미얀마에서의 민주인사탄압 및 각지에서의 민족·종교대립에 의한 분쟁이 끊이지 않는 등 아시아에는 아직도 불안한 요소가 많이 남아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은 막강한 경제력을 등에 업고 「아시아의 리더」로 나서려하고 있다.
가이후 일본총리는 4월27일 걸프전으로 연기한 ASEAN 5개국 순방 길에 나섰다.
이번 순방에서 가이후 총리는 캄보디아분쟁에 일본이 적극 개입할 뜻을 밝히는 한편 걸프해역 해상자위대 소해정파견 배경을 설명함으로써 아시아는 물론 국제적인 외교입지강화를 모색했다.
아시아에서 일본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데는 미국의 계산도 한몫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의 기존의 밀월관계를 유지하면서 아시아에 대한 자국의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하자는 의도인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아시아의 주도적 입장이 되는데 대해 많은 아시아국가들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싱가포르의 고척동 총리는 4월 중순, 필리핀 마닐라에서 미군기지가 철거될 경우 『중국·일본 등이 힘의 공백을 메우려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잠재적 위협」에 대한경계심을 나타냈다.
고척동 총리의 이 같은 말은 강대국들의 주도권행사를 경계하는 아시아국가들의 경계심을 대변하고 있다. <김국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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