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서 '조폭 전쟁' 날 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지난해 12월 22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예식장엔 '깍두기 머리'와 우람한 체격의 '어깨'들이 몰렸다. 호남의 폭력조직 '동아파' 조직원의 결혼식이 열렸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에 있던 조직원뿐만 아니라 광주광역시와 전남 나주.장성 등지의 조직원 20명도 상경해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러나 서울경찰청 폭력팀, 서울 강남경찰서, 광주 남부경찰서 형사들이 느닷없이 식장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서울을 주된 무대로 활동하는 '국제PJ파'가 결혼식 현장을 기습한다는 첩보에 따라 출동한 것이었다. 경찰의 개입으로 두 조직 간에 전면전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 소동의 발단은 불법 카지노바에서 '개평' 문제로 일어난 다툼이었다.

지난해 12월 18일 동아파 행동대원인 채모(32)씨는 국제PJ파가 서울 청담동에서 운영하는 불법 카지노바에서 도박을 하다 1억원을 잃었다. 채씨는 자신의 조직을 들먹이며 잃은 돈의 상당액을 개평으로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카지노바를 관리하던 국제PJ파 조직원 강모(32)씨는 이를 면전에서 거절했다.

앙심을 품은 채씨는 지난해 12월 19일 청담동 도로에서 강씨의 옆구리를 길이 20㎝ 회칼로 찔렀다. 강씨는 피를 흘린 채 때마침 옆을 지나가던 택시에 재빨리 몸을 실어 목숨을 건졌다.

국제PJ파 조직원들은 대동맥이 끊어져 열흘간 혼수상태에 빠진 강씨를 보호하기 위해 병원 세 곳을 옮기며 치료를 받게 하는 한편 동아파에 대한 복수전을 준비했다. 승합차 두 대에 조직원을 숨겨 결혼식장을 습격하는 시나리오를 준비했으나 경찰에 계획이 사전에 노출돼 실패로 끝났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15일 채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하고, 30평 규모의 지하 1층 바에 카드게임의 일종인 바카라 시설을 갖춰 운영한 혐의(관광진흥법 위반)로 강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두 조직은 호남 지역을 근거지로 삼고 있어 서로 잘 알고 있지만 자존심을 살리려고 칼을 휘두른 게 조직 간 전쟁을 촉발할 뻔했다"고 말했다.

권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