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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 여학생 시위중 사망/퇴계로서/사복체포조에 쫓겨 달아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20여명과 함께 넘어져 깔려/학생 천여명 병원서 항의농성
서울등 전국 22개 도시에서 25일오후 열려던 「노정권퇴진 제3차 국민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참가자들이 도심 곳곳으로 진출,격렬한 시위를 벌인 가운데 서울에서는 사복체포조를 피해 달아나던 여대생이 넘어져 숨졌다.
25일 오후 5시30분쯤 서울 퇴계로4가 대한극장건너편 진양상가골목 입구에서 경찰이 다연발 최루탄을 쏜뒤 검거에 나서자 이를 피해 달아나던 성균관대생 김귀정양(25·불문 3)이 넘어지면서 함께 달아나던 시위대에 깔려 병원으로 옮겨지던중 숨졌다.
◇현장=서울대·연세대·고려대등 대학생·시민등 1만여명이 이날 오후 5시쯤부터 극동빌딩에서 대한극장에 이르는 6백여m 도로를 점거한채 『노정권타도』등 구호를 외치고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이날 종전의 해산위주 진압방식과는 달리 서울에서만 전체시위대의 두배에 이르는 전경 1백50여중대 2만여명을 동원,극렬행위자·주동자등을 끝까지 추적해 모두 검거한다는 초강경 진압방침에 따라 시위대가 해산하지 않자 오후 5시20분쯤부터 다연발 최루탄을 발사했다.
목격자 김지훈군(21·공주사대 국민윤리 4)에 따르면 김양은 경찰이 다연발 최루탄을 계속 발사,진양상가쪽으로 몸을 피했으나 경찰 체포조가 추격해오자 폭 3m쯤의 좁은 상가옆 골목길로 시위대 20여명과 함께 달아나다 골목입구에 주차돼 있던 봉고차에 걸려 넘어지면서 맨밑에 깔려 숨졌다는 것이다.
사고당시 김양과 함께 현장에 쓰러져 있던 덕성여대생 하정림양(19·전산 1)에 따르면 김양은 시위대 20여명과 함께 사복체포조에 쫓겨 달아나던중 골목길에 승용차등이 주차해 있었던데다 사복 전경 10여명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시위대끼리 겹쳐 쓰러졌다는 것이다.
하양에 따르면 김양을 포함한 시위대가 쓰러진 뒤쪽에서 사복체포조 10여명이 달려와 사과탄을 터뜨린뒤 5분여동안 방패·곤봉으로 위에 넘어져 있던 시위대를 내리쳤으며 자신의 앞에 있던 한 남학생이 『여학생이 죽었다』고 소리치자 경찰이 길을 터주었다는 것이다.
◇병원후송=김양은 동료학생 2명에 의해 부근에 있던 한겨레신문 취재차량에 태워져 인근 백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숨진뒤였다.
김양의 시신을 1차검안한 백병원측은 『김양이 응급실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숨진 상태였으며 특별한 외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보이나 정확한 사인은 부검을 해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병원주변=김양의 사망소식을 듣고 달려온 성대생등 대학생 1천여명이 응급실주변과 병원앞 뜰에 모여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한채 『더 이상은 못참는다. 우리 학우 다 죽이는 노태우 정권 타도하자』등의 구호를 외치며 철야농성했다.
학생들중 50여명은 시신사수대를 편성,김양사체가 있는 1층 응급실 앞에서 삼엄한 경비를 펴는 한편 현관에 철제의자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진입과 시신탈취등에 대비했다.
범국민대책회의 권영길 공동의장등 간부들도 이날 백병원에 도착해 학생들과 함께 농성에 들어갔으며 김양 사인에 관한 자체조사에 착수했다.
대책회의는 이날 김양사망과 관련한 성명을 발표,『이번 사고는 경찰의 공개적이고 폭력적인 과잉진압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강경대군 사건이후 경찰의 무분별하고도 야만적인 시위진압방법이 전혀 바뀌지 않는 이 현실이 김양 죽음을 불렀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날 병원외곽에 병력을 배치,학생들의 병원출입을 제지했으며 수차례에 걸쳐 병원 앞뜰에 사과탄을 던져 병원안은 최루탄가스로 가득차 입원중인 환자와 보호자들이 큰 고통을 당했다.
◇김양주변=89년 아버지가 사고로 사망한뒤 야채행상을 하는 어머니 김종분씨(52)와 언니(26·회사원)·남동생(21)과 함께 살아왔으며 가정형편이 넉넉치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양은 86년 서울 무학여고를 졸업,모대학 지방캠퍼스에 입학했으나 재수해 88년 성균관대 불문과에 진학했으며 곧바로 통일문제연구 서클인 심산연구회에 가입,활동해왔다.
89년 이 서클회장을 역임한 김양은 90년 동아리(서클)연합회 총무부장을 지내는등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해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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