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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자동차 엔진의 大역습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혼다 창업주 소이치로

배기가스 규제는 자동차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환경은 자동차 업계를 새로운 경쟁 무대에 올렸다. 승리의 열쇠는 기술에 달려 있다. 각사는 자존심을 걸고 새로운 기술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현재 가장 돋보이는 회사는 ‘기술의 혼다’다. 시장에서는 혼다의 역습이 시작됐다고까지 말한다.

거대 자동차 회사들은 흔들리고 있다. 거대 합병의 상징이었던 독일의 다임러 크라이슬러는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분리를 선언했다. 닛산-르노도 GM과의 제휴에 실패했다. 덩치를 키워 세계 최대를 노리던 이들은 쓰라린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 가운데 혼다는 자랑하는 ‘엔진실’을 중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현재 혼다는 4륜, 2륜을 아우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엔진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10일 혼다의 엔진 기술자들은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독일 서부 아헨에서 열린 ‘아헨 콜로키엄(논문 발표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혼다는 올해 최대 화제가 되었던 뉴 엔진의 핵심기술 ‘린녹스 촉매’를 발표했다.

가솔린 수준의 디젤 엔진 개발

2006년 5월 후쿠이 다케오 혼다 사장은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미국의 배기가스 규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가솔린 수준의 깨끗한 차세대 디젤 엔진 개발에 성공했다. 이를 3년 내에 시장에 투입할 것”이라고 발표해 경쟁사들을 긴장시킨 일이 있었다. 린녹스 촉매가 바로 이를 가능하게 한 핵심 기술이었던 것이다.

자동차 기술 개발의 역사에서 혼다로 인해 체면을 구긴 기업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다임러였다. 디젤 엔진은 19세기 말 독일인 루돌프 디젤이 발명했다.

지금부터 70년 전 이들은 세계 최초의 디젤 탑재 승용차를 만들어냈다. 자존심 강한 독일 기술자들은 디젤 기술을 계승하며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지금도 디젤차 하면 유럽이라는 공식이 떠오를 정도다.

이 상식을 혼다가 바꿨다. 혼다는 창업 이래 가솔린 엔진 자동차에만 집중해 왔다. 디젤차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불과 3년 전. 신차 발매의 반을 디젤 자동차가 점한 유럽 미주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다. 아무도 혼다에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혼다는 ‘본가’를 능가한 기술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보다 앞선 배기가스 정화 성능을 갖춘 디젤 엔진을 이들 앞에서 발표한 것이다. 논문 발표 후 아헨 공과대학교 교수는 혼다의 엔지니어들을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늦게 시작해 먼저 도착한 사례는 34년 전에도 있다. 1970년대 초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는 논란이 있었다. 배기가스에서 유출되는 유해물질을 10분의 1로 줄이는 최초의 규제법인 ‘마스키 법’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빅3 자동차 메이커는 이를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로비를 펼쳐 막을 생각은 했지만 정작 기술 개발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때 무명의 일본 자동차 메이커 혼다가 갑자기 나타났다. 1972년 10월 이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CVCC 엔진’을 들고 나타나 마스키 법을 통과했다. 1966년 경자동차 N360을 생산하며 본격적인 4륜차 시장에 뛰어들었으니 불과 6년 만의 일이다. CVCC 개발 2개월 후 일본 내 왕좌를 차지하고 있던 도요타 자동차는 혼다에 기술 공유를 청했다. 다음해 포드와 크라이슬러도 여기에 동참했다.

3년 후 세계가 석유 파동의 충격에 빠졌을 때, 혼다의 최고 베스트셀러인 시빅이 등장했다. CVCC를 탑재한 초대 시빅은 ‘싸고 연비도 좋고 게다가 환경 친화적이기까지 한’ 이미지로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1982년에는 일본차 메이커로는 처음으로 미국 현지 생산에 들어갔다.

이때의 혼다를 기억하는 유럽 언론은 혼다의 차세대 디젤을 CVCC의 부활이라고 표현했다. 후쿠이 다케오 사장도 “CVCC가 깨끗한 가솔린 엔진의 선구자였던 것처럼 디젤 엔진 부분에서도 선두 자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과연 혼다의 차세대 디젤은 제2의 CVCC가 될 수 있을까? 답은 결국 70년대와 비슷하게 미국 시장에서 나올 것이다.

2006년 3월, 미국 자동차 업계에 큰 충격을 준 변화가 있다. 연비 규제를 결정하는 환경보존청(EPA)과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이전부터 강하게 비판해왔던 라이트 트럭의 연비 규제를 대폭 강화한 것이다. 라이트 트럭이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SUV나 미니밴 픽업트럭의 총칭. 미국 자동차 판매의 절반을 차지한다. 특히 빅3는 이익의 9할을 여기서 얻는다.

위기에 휩싸인 거대 메이커들

라이트 트럭의 연비 규제는 승용차와 다르게 느슨하게 적용돼 왔지만 이번 강화책에서 소형 SUV는 승용차의 연비 규제보다 심하게 적용됐다. 또 GM의 ‘해머’ 같은 초대형 SUV는 2011년부터 연비 규제를 받게 됐다. 빅3의 충격은 크다. 게다가 혼다나 도요타의 라이트 트럭 연비 실적은 여유롭게 기대 기준을 웃돌고 있다. 반면 GM·포드·닛산은 현재 기준도 간신히 지키고 있는 실정.

‘확신범’으로 벌금을 내고 있는 메이커도 있다. 벤츠나 BMW, 포르셰 등 대배기량 고급차다. 차량 가격이 워낙 비싸 벌금을 그냥 무시하고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도 기술 개발을 통해 벌금량을 줄이고자 큰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 보존 단체가 주주로 올라 있는 GM이나 포드는 그렇게 안 된다. 연비 규제 위반이라고 하는 반사회적 행위는 소송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연비 규제 강화 움직임은 빨라지고 있다. 2004년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는 ‘지구온난효과 가스(GHG) 규제’ 법안을 가결했다. 2016년의 GHG 감소율은 승용차와 차량 중량 1700kg 이하의 라이트 트럭(LDT1) 36%, 1700kg 이상의 라이트 트럭(LDT2) 25%로 정했다.

자동차 메이커들은 캘리포니아주를 제소했다. 주 단독으로 연비를 규제하는 것은 권한 밖의 일이라는 것이다. GHG 규제의 절반은 이산화탄소로 실제로는 연비 규제라는 것이 메이커들의 주장이다. 소송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캘리포니아주의 움직임은 메이커들에게 커다란 경각심을 일으켰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주의 규제를 채택하려는 주가 4개나 더 나타났고, 이를 합산하면 전미 판매 대수의 20%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또 이 중에는 부유층이 모여있는 주가 많아 비즈니스상 메이커들이 무시할 수 없다.

연비가 좋은 소형차의 비중을 의도적으로 늘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차량 단가가 내려가 이윤도 낮아진다. 그렇다면 연비 개선 효과가 있는 기술은 무엇일까? 이런 흐름을 타고 부상했던 것이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와 혼다의 차세대 디젤 엔진이다.

혼다, 도요타에 디젤로 대항

도요타는 환경 브랜드로 이미지를 굳혔다. 가솔린 엔진보다 20~30%까지 연비가 좋은 하이브리드카를 소형차부터 대형 SUV, 최고급 승용차까지 풀라인을 깔 준비가 되어 있다. 혼다도 하이브리드카에 관해서 열세다.

▶전시장을 혼다의 차세대 디젤 엔진을 개발한 기술자들. 이 중 오른쪽 두 번째의 오노 히로시는 독일 아헨의 논문발표회에 참석해 큰 박수를 받았다.

시빅이나 어코드 등 하이브리드카를 생산하고 있지만 판매 면에서는 프리우스를 앞세운 도요타의 5분의 1 수준이다. 그뿐 아니다. 두 개의 모터를 사용하는 도요타 방식과 달리 하나의 모터를 사용하는 혼다의 하이브리드는 중대형차에는 잘 맞지 않았다.

“어코드와 같이 6기통 엔진과 하이브리드는 잘 맞지 않는 조합이었어요. 모터나 배터리가 커져 솔직히 연비가 좋은 편도 아니었죠. 가격도 비싸 사용자도 장점을 알기 힘들었습니다.” 후쿠이 사장의 말이다.

혼다 관계자는 “소형차나 하이브리드카를 늘렸던 도요타의 연비 실적이 아주 좋아졌다. 이대로라면 혼다는 이길 수 없었다.” 연비로 타사에 진 것은 혼다에 굴욕적이었다. 미국 시장은 하이브리드로 승기를 잡은 도요타가 압도적인 우위. 차세대 디젤을 발표했던 2006년 5월 혼다의 전략은 디젤에 있다.

소형은 하이브리드, 중대형은 디젤로 경쟁하는 것이다. SUV의 ‘CR-V’나 어코드 등 중대형에는 이미 차세대 디젤을 투입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디젤 엔진은 가솔린 엔진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0~30% 적다. 신연료 장치나 터보디젤은 동력 성능에서도 가솔린 차보다 낫다. 조용함도 가솔린 차와 비슷하다. 본고장 구미에서 신차 발매의 절반까지 확대하면 하이브리드카를 능가하는 에코카가 될 것이다.

유일한 약점은 배기가스 대책이다. 미국의 배기가스 규제는 유럽보다 심하고 일반 디젤 엔진은 이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혼다의 차세대 디젤 엔진은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다임러는 벤츠 대형 SUV ‘M클래스’ ‘G클래스’ ‘R클래스’로 미 배기가스 규제를 해결하는 디젤 모델을 2008년 발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혼다가 처음 해결한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배기가스 규제’다.

다임러가 활용하는 배기가스 정화 기술은 자동차 부품 최대 기업인 독일의 보쉬사가 개발한 ‘블루테크 휘즈2’라고 밝혔다. 10월 초순에는 독일에서 또 하나의 뉴스가 날아왔다. 다임러·BMW·폴크스바겐·아우디가 연합한 독일 최강 4사가 미국에서 디젤 보급을 위해 동맹을 맺기로 했다는 것이다.

활용할 기술은 앞서 말한 블루테크 휘즈2. 벤츠와 마찬가지로 각사 또한 최신 디젤을 탑재한 SUV를 2008년 중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언뜻 보면 독일과 혼다의 싸움 같지만 혼다 측에서 보면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미국이나 일본 모두 디젤차는 “냄새 나고, 시끄럽고, 더럽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깨끗하고 조용한 유럽산 디젤 자동차가 달리기 시작하면 사용자의 인식도 바뀔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 미국자동차조사회사인 JD파워의 최근 ‘디젤 우위’라는 리포트다. 지난해 9월 말 발표했던 ‘미국자동차 대체엔진 조사’에 따르면 2013년 미국의 신차 점유율은 하이브리드카 5%, 디젤차가 9%로 예측되고 있다.

도요타는 일본에는 수요가 없다고 하여 하이브리드카 확대에만 전력을 기했다. 프리우스가 큰 붐을 일으켜 선진적 환경성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디젤 엔진을 앞세운 혼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혼다 엔진실의 역습이 이제 또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노무라 아키히로·다케마사 히데아키 동양경제 기자 정리=임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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