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돈·체면보다 신명나는 직업 선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살면서 누구나 가끔『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건가?』하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런 질문에 부닥칠 때마다 얻은 대답을 놓고는 엄두가 나지 않아 질문 이전의 일상으로 되돌아가 흐느적거리게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정하씨(41)는 매우 별나긴 하지만 용감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여느 사람처럼 이런 질문을 반복했던 그는 40세가 되던 지난해말 일대 결단을 내리고 치과의사에서 콩비지백반 집 주방장 아저씨로「신나는 변신」을 했기 때문이다.
서울고·서울대 치대를 졸업한후 서울·춘천 등에서 12년간 개업의로 주위의 부러움을 사왔던 그는『늘 남의 입속을 들여다보며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서글퍼지기도 하고 따분해지더라』는 것.
얼마간의 궁리 끝에 그는 겉치레와 체면을 벗어 던지기로 결정하고 40회 생일을 맞은 지난해 4월30일 불혹에 접어든 자신에게「해방감」이라는 큰 선물을 안겨주듯 병원 문을 닫았다.
『직업의 본질은 돈이나 체면에 있지 않고 보람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을 의식 안하고 신명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재미있어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반문하는 이씨가 주방장이 된 것은 사람들이 훈훈한 정을 나누는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고, 그 공간으로 우리 고유의 음식을 취급하는 음식점이 제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이런 생각에 도달한 이씨는 곧 요리·요식업관련 서적을 독파하고 요리학원에 등록, 본격적으로 공부한지 7개월만인 지난해 11월 서울 충무로2가 세종호텔 뒷골목에 콩비지·된장뚝배기·김치국수 등을 파는 40평 규모의 수수한 밥집「아랫목」을 차리고 주인겸 주방장의 새 삶을 시작하게 됐다.
한 때 아내·두아들·주위 사람들의 심한 반대와 싸워야 했던 이씨는 콩비지·장터국밥에 자신 있는 주방장의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비로소 살맛나는 인생을 실감했다고 밝게 웃었다. 『흔히 한 우물을 파라고 얘기하지만 불성실한 변신을 할 때 그런 말이 어울린다』는 이씨는 국민학생인 두 아들에게도『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있다고-.<고혜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