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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서 최씨 정리대상 찍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17면에서 계속>
이런 식으로 검찰. 정보부에 불려갔던 것 말고는 별다른 시련(?)을 겪지 않았던 최씨는10·26으로 세상이 바뀌자 신군부에 의해 적잖이 흔히 났던 모양이다.
김재규 부장이 최씨를 거론하자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은 이학봉 수사국장에게 특별조사를 지시했다. 최씨는 근혜씨가 전 보안사령관을 만나기 전까지 며칠동안 구금상태에 있어야했다.
합수부 조사에서 최씨의 실정법위반이 적발됐는지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수사관계자들의 조심스러운 증언을 모아보면 신군부에게도 최씨는「정리되어야할 대상」이었음이 확실한 것 같다.
고위수사관계자 Q씨는 최씨의 범법여부에 대해선 언급을 회피한 채『최씨로 인해 시끄러웠던 만큼 봉사단에서 손을 떼고 서울을 떠난다는 선에서 매듭지어졌다』고 증언했다.
근혜씨와 전사령관이 만난 자리에서 이런 담판이 이루어졌는지는 분명치 않다. 근혜씨는『전 사령관에게 최씨에 대한 비난과 혐의는 모두 근거 없는 모함이니 속히 풀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박정희 시대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지 12년이 지난 지금 세인들이 최씨 소동을 놓고 가장 속상해하는 대목은 근혜씨와 근영·지만씨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파열음인 것 같다.
『최씨가 무슨 죄를 졌다고 그러느냐』는 근혜씨와『최씨 때문에 우리집안이 수렁에 빠졌다』는 근영·지만씨는 모두 지난해11월 육영재단·어린이회관분규로 또 한번 마음의 상처를 입어야했다.

<6공에 탄원서>
그동안 최씨에 대한 반감을 숨겨왔던 근영·지만씨 측은 지난해 8월 6공 청와대에『최씨 문제를 정리해달라』는 탄원서를 냈다. 내연하던 갈등이 근화봉사단(근혜측)과 숭모회(근영측)등 지지세력간의 충돌로 터지자 항간에는『대통령 유자녀들끼리 도대체 무슨 일이냐』는 질책이 쏟아졌던 것이다.
결국 근혜씨와 최씨는 육영재단·어린이회관의 이사장과 고문직을 내놓아야 했으며 이 일은 마침 지만씨의 히로뽕구속과 겹쳐 박정희 대통령의 우울한 유산으로 되새겨졌다.
근혜·근영 두 자매는 최씨를 둘러싼 논란이 자매간의 불협화음으로 커지자 지금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 나름대로의 주장을 내놓으면서도 혹시나『언니에게』『동생에게』누가 되지나않을까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라고 했다.
청와대 시절부터「대통령 딸」로 대접받기를 싫어해 얼굴을 감추다시피 하고 살았던 근영씨는 지금 많이 달라져 있다. 근영씨는 본지「청와대비서실」에 대한 적극적인 증언에서 『언니를 위해서도 최씨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저는 언니를 누구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아버지·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지금 가족이라곤 언니와 지만이 뿐 아닙니까. 저는 자기언니하고 백화점에 같이 쇼핑가 떡볶이도 먹고 하는 친구가 제일 부러워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지만 저는 언니가 퍼스트레이디역할도 잘 했다고 생각해요. 카터 대통령내외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언니는 만찬석상에서 식사도 제대로 안하면서 우리의 인권상황·안보문제를 실명했대요. 나중에 로절린 여사가 얼마나 언니한테 반했는지 10·26후 직접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와 위로하기도 했잖아요. 청와대 시절만해도 저는 언니가 하는 봉사단이 좋은 걸로만 알았어요. 최씨도 좋은 사람만 같았고요.』 근영씨는 이 부분에서 말을 잠시 멈추며 흥분을 가라앉혔다.『그런데 언니의 그 고운 이미지가 최씨 때문에 많이 손상된 것 아닙니까. 감히 말하건대 최씨는 우리 집안을 해친 사람이에요. 자신에게 따라 붙는 잡음을 결과적으로 몽땅 언니에게 뒤집어씌운 것 아닙니까.

<"우리집안 해쳐">
세상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리 있나요. 세상사람들이 그의 비리에 대해 말하고 검찰·정보부에서 조사할 정도였으면 정말 잘못한 것이 있는 거지요. 그러면 스스로 조용히 언니 곁에서 물러나야 도리 아닙니까. 이번에 지만이 하고 같이 행동으로 보인 것도 언니에게 사실을 그대로 전달해주기 위한 거였어요. 언니는 주변의 이상한 사람들에 의해 차단되어 있어요.』
근영씨는『언니와 다시 웃는 얼굴로 아버지·어머니 추모사업을 하기 원한다』며 이렇게 말을 맺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늘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사람들은 우리더러 로열패밀리라고 하는 데 우리는 그런 옛날의 왕족이 아니야. 임기가 끝나면 자연히 청와대를 떠나는 대통령가족이야」라고요. 언니도「파리 유학시절이 그리워. 그때는 노변카페에 앉아 코피를 마셔도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는데…」라는 말을 종종 하곤 했어요. 우리가족의 시대는 이제 역사 속에 묻힌 것 아닙니까. 이제는 지만이도 구치소에서 나와 정신차리고 언니와도 옛정을 화목해 평범한 시민으로 오순도순 살았으면 좋겠어요.
박 대통령 일가중 지금 가장 외로운 처지에 놓여있는 이는 근혜씨다. 최씨에게 쏟아지는 세인의 눈총을 같이 받아내고 있는 근혜씨는 여전히『모든 비난은 모함이며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0·26후에는 봉사단을 치기 위해, 그리고 지금은 20만 회원에 달하는 박대통령·육여사 추모사업회를 누르기 위해 최씨를 걸어 자신을 공격한다는 논지다.

<"결혼은 안할 생각">
근혜씨의 증언.
『세상이 변하고 인심이 바뀌는걸 보면 한없이 서글퍼져요. 봉사단문제만 해도 그렇잖아요.
구국이란 표현을 썼다고 해서 말을 하는 모양인데 구국여성봉사단이 처음 생길 때만 해도 월남패망으로 인해 나라안이 위기의식으로 가득했어요. 그래서 목사들이 뭉쳐 구국선교단이 되고 여성들이 모여 구국여성봉사단을 만든거죠. 그렇게 2년쯤 지나니 이제는 위기의식도 어느 정도 사라지고 해서 새마음 봉사단으로 바뀐 거예요.
결혼도 안한 대통령 딸이 나이 지긋한 어른들 앞에 나가 충효를 이야기해 여론이 나빴다고들 하는데 그때 노인분들이 저를 얼마나 성원했는 줄 아십니까.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애쓴다고 얼굴한번 보자던 분들도 많았고요. 그리고 우리 일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던 언론과 박수를 아끼지 않았던 기업가·공무원분들이 계셨잖아요. 일을 하다보니 다소무리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일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모두 순수한 열정뿐이었어요. 그러니 회원수가 3백만명까지 될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10·26이 나고 새마음 봉사단을 없애지만 않았어도 지금 훌륭한 사회봉사조직으로 남았을 겁니다. 지금 근화 봉사단도 그렇고요. 뭐든지 커지면 견제 받게 마련 아닙니까.』
근혜씨는『결혼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리고『이젠 모든 일이 수습돼 집안에 다시 평화가 오기를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어디선가「박정희 가가 몰락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더군요. 가슴속으로 물었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면목도 없고요. 최 목사님 문제로 시끄러운 것이 형제간 다툼으로 비쳐질 때마다 사람 만나기가 두려워요. 지금 그분은 80고령에다 건강도 나빠 저와도 접촉이 없어요.』
파문의 중심인물 최씨는 지금 서울에 없다고 한다. 최씨의 측근임을 자처하는 S씨(여)는 거듭되는 최씨 인터뷰요청에『그분은 원래 언론과 만나지 않는다. 그분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답변을 보내왔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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