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불필요하게 커졌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책이 불필요하게 커지면서 판형마저 획일화해 원가 상승, 진열 공간의 낭비, 책의 몰 개성화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80년대 들어 가로쓰기가 일반화되자 출판사들마다 원고 내용과 분량에 관계없이 국판을 무비판적으로 선호하다 최근엔 국민학생이 보는 동화집 등의 책들마저 국판으로 커지는 추세다.
이미 출판한 책을 다시 낼 경우 조판사이즈는 그대로 둔 채 판형만 키워 본문과 여백의 균형을 깨뜨리고 종이만 낭비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국판은 4·6판보다 제작비가 15∼20% 더 들고 서점에서 진열할 때도 15%정도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또 책의 개성은 표지뿐만 아니라 책 등에도 있는 법인데 판형을 턱없이 키우다보니 원고분량이 적은 책은 등이 얇아져 개성이 없어지고 서가에 꽂아둘 경우 찾아보기도 어렵다.
도서출판 풀빛 대표 나병식씨는 우리 경제가 양적으로 팽창하면서 문고판 퇴조현상과 함께「큰 것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정착, 원가상승의 압박을 감수하면서까지 책을 크게 만드는 경향이 뿌리내리게 되었다고 자조했다.
나씨는 또『시각적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작게 만들면 눈에 띄지도 않을 뿐 아니라 서점에서 진열도 잘 안해 주기 때문에 출판사로서는 고충이 많다』고 덧붙였다.
북 디자이너 정병규씨는『책의 개성을 살리려는 의식이 퇴조하고 무조건 크게만 만드는 것은 출판사들의 상업주의 때문』이라고 못박고『원고의 내용·분량에 맞춰 책의 모양을 다양화하는 것이 출판문화 향상을 위한 당면과제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종로서적 이철지 사장은『원래 4·6판을 기준해 만들어진 서가를 국판에 맞추다보니 네칸중 한칸은 줄게 됐다』며『진열공간·확대는 비싼 땅값 부담을 가중시켜 도심에 서점이 들어설 수 없도록 만든다』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전통적으로 가로쓰기를 하는 일본인은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크기의 4·6판을 단행본의 기본 형태로 취하고있다. 우리와 일본의 경제규모를 비교할 때 엄청난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뜻 있는 출판계인사들은『국판으로 획일화됨으로써 조판·인쇄·제본 등 제작시간을 줄여 대량제작에 도움을 주는 측면도 있지만 정가를 높여 받기 위한 편법으로 책을 무비판적으로 크게만 만드는 것은 엄청난 낭비』라며 하루발리 개선해야한다고 입을 모았다.<최형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