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섬찟과 섬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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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ㄴ. 붉은 핏자국을 보는 순간 가슴이 섬찟했다.

우리는 오싹하는 공포나 두려움을 느낄 때 위 문장에서처럼 '섬찟하다'를 쓰곤 한다. 하지만 이 말의 표준어는 '섬뜩하다'이다. 의미가 똑같은 형태가 몇 가지 있을 경우 그중 어느 하나가 압도적으로 널리 쓰이면 그 단어만을 표준어로 삼는다고 한 표준어 규정 제25항에 따라 '섬뜩하다'만 표준어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말뭉치를 검색해 보면 '섬찟'에 비해 '섬뜩'이 압도적인 빈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섬찟'과 '섬뜩'의 의미가 백 퍼센트 같은지는 의문이다. 다음의 예를 보자.

ㄷ. 그는 나를 보자 섬찟 놀라 뒤로 물러섰다.

ㄹ. 옷 속으로 파고드는 그의 손이 섬뜩하게 차가웠다.

ㄱ, ㄴ과 달리 ㄷ, ㄹ에서는 '섬찟'과 '섬뜩'을 맞바꾸기가 좀 망설여진다. ㄷ의 경우 '섬뜩'은 덜 자연스럽고, ㄹ의 경우 '섬찟하다'는 어색하다. 이는 두 단어가 미세한 차이를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섬찟'과 '섬뜩'은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상순(사전 편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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