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와 5·16을 조화할때(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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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다. 지나간 과거가 과거로 묻혀 사라진 것이 아니고 과거의 잔영이란 어떤 형태로든 현재속에 살아 있는 법이다.
멀게는 조선의 당파성이,가깝게는 4·19나 5·16이 모두 함께 우리의 오늘 삶에 공존하고 있다.
해마다 겪고 있는 민주화 갈등의 혼돈속에서 5·16 30년을 맞는 우리로서는 청산되고 반복되지 않아야 할 역사적 과오들이 왜 이토록 되풀이 되는지에 실망과 좌절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4·19의 민주개혁을 향한 젊은 욕구와 공공안녕·질서회복을 주장한 5·16의 강경정치,4·19의 독재타도 민주화와 5·16의 경제성장 위주의 개발독재 산업화 정책,이 두개의 과거적 개념이 오늘의 삶에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대립하고 대치하는 상황임을 안타까워 하지 않을 수 없다.
5·16이후의 권위주의 정치는 산업화를 위해서 민주화를 유보했고 억압했다. 5·16의 공과는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면서도 민주 욕구를 억압했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권위주의 시대를 벗어나 민주화시대를 살아야 할 우리에게 있어 이젠 산업화와 민주화는 대립개념이 되어서는 안된다. 상호보완적이고 동시 진행형이어야 한다. 산업화를 위해서 민주화를 유보할 수 없고 민주화만을 위해서 산업화를 포기할 수 없는 오늘이다.
4·19와 5·16을 치른지 30년이 넘게도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오늘의 삶에 접목시키는 지혜를 터득지 못하고 있다. 민주화 요구를 위해선 어떤 방법,어떤 폭력을 써도 무방하다는 운동권 욕구와 법질서 회복을 위해서는 강경대처,밀어붙이기 밖에 없다는 정부의 대책이 오늘 이 시점에서도 맞서고 있다.
4·19적 공과와 5·16적 공과가 맞서 대립하고 있을 뿐이다. 민주개혁과 법질서 회복이 맞서고 있고 무분별한 집단폭력과 밀어 붙이기식 강성통치가 충돌하고 있을 뿐이다.
역사의 공과를 따지는 까닭은 지난날의 허물을 오늘의 삶에 되풀이 재연하지 말자는 교훈적 이유 때문에 과거를 따지고 역사를 배우는 것이다.
5·16을 30년째 맞으면서도 조화를 이뤄야 할 부분에서는 대립하고 상호의존적이어야 할 대목에서는 상호대치적 마찰을 일삼고 있다.
30년전 민주화 욕구와 법질서 회복이 아직도 조화를 이루지 못한채 거리에서 직장에서 공장에서 마찰과 갈등을 빚고 있다.
4·19와 5·16의 긍정적 측면인 민주화와 산업화는 대립이 아닌 상호보완으로 정착되어 우리 시대 삶의 가치관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4·19와 5·16의 부정적 측면인 무분별한 집단시위와 권위주의적 공안통치는 낡은 역사의 유물로 함께 청산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역사의 긍정적 측면은 대립과 갈등속에 빛을 잃고 사라져 가고 있고 부정적 측면만이 무성하게 되살아 나는 오늘의 5·16을 보면서 우리는 깊은 절망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4·19와 5·16사이에서,화염병과 최루탄 사이에서 내일도 어제의 과오를 되풀이 할 것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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