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위기「오페라 상설무대」성악인들이 살려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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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운영 난으로 문닫을 뻔한 민간 오페라단 오페라 상설무대(대표 김일규)가「제대로 된 오페라 무대」에 애착을 갖는 성악인들의 열정과 의욕으로 기사회생(?)한다.
오페라의 전문화와 대중화를 내걸고 지난83년 창단된 오페라 상설무대는 한국 초연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페도라』『포스카리가의 비극』등으로 크게 호평 받았으나 재정난을 견디지 못해 지난해 서울오페라단과 합단을 시도했다. 그러나 서울오페라단의 제작비 동원력과 오페라상설무대 김일규씨의 연출기량을 이상적으로 결합시키려던 당초의 계획이 여의치 않자 김씨는 합단했던 서울오페라단을 떠났다. 또 누적된 적자운영 때문에 오페라 상설무대 간판을 다시 내걸 수도 없었던 형편이었다. 이런 사정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보던 테너 박성원, 소프라노 배항숙씨 등 26명의 30∼50대 성악가들이 지난 2월 김씨와 함께 기획·제작의 부담을 나눠 맡으면서 오페라상설무대를 되살리겠다고 나섰다. 성악가들은 각자 형편에 닿는 대로 기금을 내놓는가하면 출연료를 받지 않기로 하고 오는 6월l9∼21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무대에 올릴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루스티카나』와 레온카발로의『팔리아치』연습에 한창이다.
약 3억원이 드는 제작비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김씨는 『성악인들이 남의 일처럼 팔짱만 끼고 수수방관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후원기업을 하나라도 더 구하려고 더불어 걱정하며 애써주는 것만 해도 큰 위안』이라며 감사했다.
그 동안 제작비보다 무대의 완성도에 신경 쓰느라 살던 집을 팔아치우는 등 개인적 희생을 감수한 김씨가 모처럼 신바람이 나서 오페라에 매달릴 수 있는 것은 이렇듯「함께 만드는 무대」에 대한 성악인들의 보기 드문 애착과 의욕 때문이다.
이런 열기를 뒷받침하듯 오페라 상설무대는 이번 공연을 2개월이나 앞둔 지난4월 중순께 공연작품의 내용과 출연진 등을 소개하는 무려 36쪽짜리 대형전단 3만부를 만들어 널리 배포하고있다. 또 공연 즈음에는 오페라 대본전체가 수록된 2백쪽짜리 팜플렛을 따로 만들 예정. 오페라를 우리말로 번역해 공연하면서도 한글 자막을 곁들이는 국내 최초의 시도로 가사전달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친절한 공연자세를 보이고 있다.
오페라 상설무대 6월 공연팀은 남다른 각오와 의욕으로 뜻이 맞는 성악인들이 호흡을 이루고 있는 만큼 일반적인 공연준비 외에도 국내오페라공연의 문제점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진지한 토론 모임을 갖는 등 여느 오페라 출연·제작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있다. 지난 10일에도 출연진과 무대장치 담당자 등이 한자리에 모여「한국에 오페라가 상륙한지 40년이 넘었는데도 영화 등 다른 외래문화처럼 대중화되지 못하고 왜 여전히 재미없고 시시한 공연물로 남아있는가」에 대해의견을 나눴다. 우리 정서에 맞는 창작 오페라, 대중 속으로 파고들려는 음악인들의 노력, 시각적 감동을 줄수 있는 본격무대, 오페라단의 운영방법쇄신 등이 제기됐다. 그리고 국제적인 문화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관객들의 안목이 전에 없이 높아진 만큼 이제는 겉모양만 대충 얽어낸 오페라로는 승부를 걸 수 없다는 의견일치를 얻기도 했다. 볼거리와 들을 거리의 수준이 차서 넘치는 공연이라야 종래의 「동원관객」을「자발적 고정관객」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것이다.
이렇게 막 올리는 오페라 상설무대의 재기공연은 김덕기씨의 지휘, 라 스칼라좌 전속연출가 롤랑제르베의 연출, 라 스칼라좌 무대장치담당 롤 화롤피의 무대디자인으로 이뤄진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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