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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뒤덮은 “통일증후군”/축구단 따라가 만난 북한동포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시내곳곳 현수막마다 “통일”/처녀들 “통일될때까지 시집 안갈래요”
평양은 온통 「통일신드롬」에 걸려있다.
김일성 주석의 궁전이나 다름없는 평양에서 통일은 모든것에 우선하고 있다.
남녀노소 모두 남쪽사람들을 만나기만하면 마치 앵무새처럼 금방 튀어 나오는 말이 『통일을 빨리해야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마치 통일이 당장이라도 실현될 수 있으며 통일이 되면 남북간에 산적되어 있는 모든 문제가 금방이라도 해결된다는 태도다.
기자가 청소년축구 남북단일팀구성을 위한 2차평가전(12일·평양)을 취재하기위해 지난 10일부터 13일까지 평양에 체류하는동안 「통일」이라는 말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도들어 나중에는 통일은 마치 북쪽사람들만이 원하고 있는 착각마저 일어났다.
북한적십자중앙위원회 선전담당을 맡고 있는 김용호씨(53)는 『남쪽사람들은 입으로만 통일을 외치고 있는데 실제적으로는 통일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 같다』면서 북측에서 제의한 「상호불가침선언」을 남측에서 거부하고 있다고 실례를 들어 주장했다.
그는 남측에서는 체육·문화·경제교류를 통한 점진적인 통일방법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는 독일식 통일방식을 꿈꾸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같은 남측의 통일방안은 결국 북측을 흡수하겠다는 얄팍한 계산이라면서 「어느 한쪽이 한쪽을 먹겠다」는 발상으로는 통일을 이룰 수 없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양쪽의 체제를 인정하는 바탕에서 통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양측의 체제를 인정하는 통일방안은 「두개의 코리아」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김씨는 『현실적으로 이 방법밖에 없지 않느냐』면서 진정한 통일은 다음세대에서 이뤄야 할 것이라고 슬며시 후퇴.
지난 12일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2차평가전을 구경나온 강명옥양(23·평양시 문수거리)은 『통일이 되어야 시집을 갈 계획』이라며 남쪽사람들이 빨리 통일이 되도록 노력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김일성 종합대학 주체철학과 3학년생인 권철우군(22)은 『남쪽기자선생들이 통일에 대한 신념이 부족해 남쪽에서 통일열기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엉뚱하게 기자들에게 책임을 떠맡기고 『민족이 통일되어야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남쪽학생들의 통일열기가 북쪽학생들만큼 강하냐고 되묻기도 했다.
일요일인 12일 오전 대동강변의 주체사상탑 근교 공원에 아버지(강용칠씨·37·발전소기사)와 함께 놀러나온 강주혁 어린이(10·금성국민학교 1년)는 『남쪽인민들이 못살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하루빨리 통일되어 남쪽어린이들과 함께 지냈으면 좋겠다』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비서,그리고 당의 선전문구가 요란한 평양시내에 요즘 새롭게 등장한 구호가 바로 통일문제.
평양시 곳곳에는 물론 경기장에도 「우리식대로 살아가자」,「1990년대는 민족통일을 반드시 이룩하자」는 대형 현수막이 설치되어 눈길을 끌고있다.
15만명이 운집한 2차평가전에서 미리 입장한 군중들은 사회자가 「조국」을 선창하면 「통일」을 소리높이 외쳐 5.1경기장이 마치 통일궐기대회장 같은 분위기였다.
또 김일성 종합경기장에서 벌어진 집단체조의 마지막 프로그램인 「조선은 하나다」도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민데다 10만관중들과 4만명의 출연자들이 통일을 소리높이 외쳐 통일이 만사를 해결하는 척도라는 생각을 불러 일으키게 했다.<임병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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