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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허가받는 「신고제」/집시법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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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법조문 자의적용­신고기피」 악순환만/“시위는 무조건 불순” 당국시각도 문제
명지대생 강경대군 치사사건을 계기로 올바른 시위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와 함께 바람직한 대안이 나와야 한다는 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최루탄·물대포는 물론 쇠파이프까지 사용하는 과잉진압이나 화염병과 돌이 난무하는 과격시위는 이제는 사라져야 하며 이같은 바람이 단순한 양비론에서 벗어나 현실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잘못 운용돼온 집시법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시급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체집회의 10%정도만이 신고되고 당국도 필요에 따라 허가와 불허를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현행 집시법하에서는 올바른 시위문화정착이 요원할 수 밖에 없는 실정.
물론 법조항보다는 평화적 시위를 정착시키겠다는 정부와 국민 모두의 의지가 더욱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는 하루빨리 국민적 합의를 거쳐 문제가 되는 조항을 개정하고 국민 모두가 감시자가 되어 정부와 시위대의 과잉과 과격을 견제하는 것은 물론 편파적인 법적용과 과격시위는 여론으로부터 배척받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야 할 것이다.
재야·시민단체들은 집시법이 개정된 직후부터 독소조항들을 지적해 왔고 정부당국도 강군 치사이후 개정검토 입장을 밝히고 있어 조만간 법개정은 이뤄질 전망이다.
현행 집시법의 문제점과 개정방향에 대한 의견등을 살펴본다.
◇문제점=현행 집시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당초의 목적이나 기대와는 달리 집시법이 평화적인 집회와 시위정착에 아무런 역할도 못한다는 것이다.
89년 집시법이 개정된 이후 그해 4월28일부터 금년 4월30일까지 서울시경에는 4백68건의 집회신고가 들어와 이중 3백75건이 허가됐다.
그러나 신고된 집회는 이 기간중 발생한 전체시위 4천6백여건의 10%에 불과한 것이어서 대부분 집시법을 외면하고 집회·시위를 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불허된 93건의 집회는 대부분 국민연합·전민련·전노협 등 재야·노동단체가 신청한 것이며 34건은 「폭력시위전과가 있다」,37건은 「장소가 불법이다」는 것이 불허이유였다.
집시법이 발효된 직후 처음 몇번은 형식적이나마 집회신고를 하던 재야운동단체들은 최근에는 아예 신고없이 집회와 시위를 강행하고 있다.
전노협 홍보부장 이용범씨(32)는 『재야운동단체들은 평화시위를 다짐해도 무조건 불허통지를 받는다』며 『집시법이 정부가 생색을 내기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기 때문에 차라리 집회신고서를 안내고 있다』고 말했다.
재야단체들은 현행 집시법이 신고제인데도 경찰의 자의적 해석과 법적용으로 사실상 허가제로 운용되기 때문에 「문제단체」들은 전혀 법의 혜택을 못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경실련과 공해추방운동연합,각종 소비단체등 비교적 온건한(?) 단체들은 집회허가를 받아내지만 당국이 수많은 제한조치를 가한다는 것이다.
제약의 바탕에는 집회와 시위를 국민의 당연한 권리행사라기 보다는 불순한 것으로 바라보는 정부 당국의 기본시각이 깔려있다는 것이 이들의 일치된 주장이다.
실제로 서울시내의 한 경찰서장은 『재야단체들은 평화시위라고 신고하고도 대부분 폭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무조건 집회를 불허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경찰과 시위주최측이 상대방에 대한 비난·책임전가에만 급급한 가운데 「공정한 법적용과 엄정한 법준수」는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독소조항=「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를 금할 수 있다」는 집시법 제5조가 경찰의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부분의 경찰서장들이 재야단체들의 집회신고에 대해 『과거에 폭력시위를 한 사실이 있다』며 제5조를 적용시켜 불허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조항이 구체적인 위반사항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허될 경우 항의하거나 재신청할 여지조차 없다는 것이 재야·시민단체의 불만이다.
제11조 옥외집회와 시위금지장소 조항도 자유로운 집회를 가로막는데 크게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11조는 국회의사당,각급 법원,외국대사관,대통령관저와 국회의장·대법원장·국무총리공관,주한 외교사절의 숙소 등으로부터 1백m이내의 집회와 시위를 금하고 있다.
이 법을 엄격히 적용할 경우 서울시내 중심부에서는 집회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말이다.
제6조 신고서 제출방식과 제8조 금지통고조항도 신고자에게는 일방적으로 불리하고 경찰에만 편리하게 돼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신고서 제출시 집회의 주최와 목적·일시장소·시위방법·질서유지인의 주소와 성명 등 기본사항만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연사명단과 연설내용,피킷에 적힌 구호까지 적어내야 하는 등 불필요한 간섭이 심하다는 것이다.
피킷구호까지 일일이 통제하는 것도 문제고 갑작스런 사정에 의해 연사가 바뀔 경우 허위신고가 되는 등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신고서 접수후 보완통고를 받으면 12시간 이내에 재접수토록 하고 있느나 경찰이 오후 7시쯤 보완통고를 할 경우 다음날 아침까지 민원실이 근무안해 재접수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경찰은 신고서를 접수받고 48시간 이내에만 금지통고를 해주면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실련의 박병옥 간사(31)는 『심지어 집회 2시간전에 금지통고를 받은적도 있으며 이 경우 금지이유가 부당해도 법적 대응이 불가능하고 참가들에게 집회가 금지됐음을 알릴 시간여유가 없다』며 『적어도 24시간 이전에는 금지통고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개정방향=무엇보다 집회에 대한 경찰의 자의적 판단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도입돼야 한다는 것이 시민단체와 재야법조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경실련과 서울대 신동운 교수(법학)등은 경찰의 금지통고가 부당하다고 판단될 경우 법원에 적부심을 신청하고 법원은 24시간 이내에 이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총무 윤종현 변호사는 『헌법에 집회의 사전허가를 인정치 않고 있고 불법시위가 있었어도 사후에 적법성을 따져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현행 집시법 제5조1항의 포괄적 금지조항은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변호사는 경찰에 시위의 적법성 여부를 판단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자체가 엄격한 의미에서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집회장소의 경우 고려대 유병화 교수(법학)는 서울의 극심한 교통체증을 고려해 시위대가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을 당국이 미리 확보하고 제공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유교수는 또 『집회나 시위는 정부의 허가대상이 아니며 집시법을 개정할 때도 재야·시민단체와 정부당국,법조인들이 공청회를 열고 충분한 토론과 연구를 거쳐야 한다』며 『정부가 일방적으로 법을 바꿀 경우 평화시위 정착에 도움이 안될뿐 아니라 또다른 시비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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