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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로펌으로 복귀한 이종남 前 감사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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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필사즉생(必死卽生), 필생즉사(必生卽死)'.

서울 중구 순화동 에이스타워 6층에 있는 법무법인 세종의 이종남(李種南.67)고문변호사 사무실에 들어서면 이 글귀가 적힌 액자가 눈에 들어온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13대 후손인 李고문은 1987년 검찰총장에 오른 뒤부터 이 글귀를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亂中日記)에 나오는 이 글귀를, 그는 "죽을 각오로 올바른 길을 가다보면 나라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자신이 검찰총장에 올랐을 때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으로 국무총리.법무부 장관.검찰총장 등이 한꺼번에 바뀌어 검찰 조직을 추스리고 일을 처리하는데 이 좌우명이 길잡이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 감사원장 4년 임기를 마치고 법무법인 세종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돌아와보니 국내 로펌들이 많이 커졌어요. 변호사도 늘었지만 종합서비스가 가능하도록 회계사.세무사 등 전문가들도 많아요.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국내 대형 로펌들이 규모를 키우는 것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는 "고객에게 얼마나 좋은 서비스로 충분한 만족을 안겨 주느냐에서 로펌의 승패가 갈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걸어온 길이 확연히 달랐던 김대중(DJ)전 대통령과 4년 전 인연을 맺은 이유를 물었다.

"박주선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사무실로 찾아왔어요. 감사원장으로 낙점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적임자가 아니다'고 했죠. 5, 6공화국에서 검찰총장.법무부 장관을 거친 사람이 어떻게 당시 정권에 핍박받은 DJ 아래에서 감사원장을 할 수 있느냐며 사양했어요. 하지만 '대통령께선 아랫사람의 합리적인 의견을 존중하신다'는 朴비서관의 말에 설득당했습니다."

재임 중 가장 뿌듯했던 감사로 '공기업 특별감사'를 들었다.

"2000년 9월이었어요. 감사원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공기업 노조 시위대가 감사원 입구까지 찾아와 데모를 벌였지요. 그러나 철저하게 감사했어요.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들의 경영이 너무 방만했어요. 구조조정한다면서 직원들을 내보낸 뒤 다시 그 직원을 임시직으로 고용하는 식이었어요. 기획예산처와 협의해 지적사항을 고치지 않는 공기업에는 예산 배정을 하지 않는 식으로 처리했죠. 그래서 공기업에서 퇴직금 누진제가 사라졌습니다. 감사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그는 DJ로부터 "악역(惡役)을 맡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李고문은 재임 중 '효율성 감사'를 강조했다. 법규에 근거해 감사하되, 국가 이익이나 예산절감 효과 등을 감안한 감사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법규와 원칙의 틀에 갇혀 '감사를 위한 감사'를 해서는 안 된다"며 "잘못된 법규를 고쳐 국가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 감사원의 임무"라고 말했다.

'공직자 골프장 출입 실태점검'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총리실 등이 자제를 당부하며 감사원 핑계를 댔기 때문에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지난해 여름 수해가 난 직후 딱 한번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李고문의 취미는 태권도. 대전지검에 평검사로 근무할 때 위장 치료를 위해 배웠는데 3단까지 땄다. 아직도 어지간한 벽돌과 송판을 깰 수 있다며 군살이 박힌 주먹을 쥐어보였다.

그는 지난 9월 50여년간 모아온 소장도서 4천3백여권을 모교인 고려대 법대에 기증했다.

"제 인생이 녹아 있는 책들입니다. 선뜻 기증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머뭇거리고 있는데 아내가 혼냅디다. '죽으면 다 버리고 갈 건데 빨리 안 주고 뭐하고 있느냐'고요. 일흔이 가까웠습니다. 이제 밑천이 거의 떨어졌어요. 그래도 남겨줄 지혜가 있다면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줄 겁니다."

글=김동섭,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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