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개혁­보수 갈림에 고민/미 국무부 한반도문제 분석가 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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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경제난불만 무마에 안간힘/경공업 역점 중국식모델 선택 가능성
북한은 지금 정치·경제·군사·외교정책에서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미 국무부의 한반도문제 분석가가 9일 말했다.
존 메릴 미 국무부 정보연구국 한국문제 분석담당관은 이날 뉴욕 월도르프 아스토리아호텔에서 열린 코리아 소사이어티 주최 오찬연설에서 북한은 ▲정치적으로 김정일의 세습공고화 ▲경제적으로 국민의 생활안정을 위한 경공업발전 ▲군사적으로 과다한 군사력유지 부담 ▲외교적으로 대외관계개선에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릴박사는 북한은 이같은 여러 분야에서 개혁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일부 분야에서 이를 추진하고 있음이 확실하지만 북한이 이를 추진하는데는 지금까지 고수해온 혁명원칙들과 상충되는 것도 많아 선택의 갈림길에 있다고 분석했다.
메릴박사는 미 하버드대에서 아시아문제연구로 석사학위를,델라웨어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반도전쟁의 기원」(89년),「한국전쟁이 침략이냐 해방전쟁이냐」(88년),「제주반란」(88년·일어) 등 한반도 연구서적들을 출판한 한반도문제 전문가로 87년부터 미 국무부 한국문제 분석가로 있다.
다음은 메릴박사의 한반도문제 분석 연설요지다.
북한 김일성의 후계체제 확립노력은 지난 수십년간 꾸준히 진행되어왔고 마지막 단계에 와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확한 시기를 점칠수는 없으나 김정일은 아들 김정일에게 90년대 중반 권력을 이양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일의 후계체제가 장기적·정치적 측면에서 성공할지는 속단할 수 없으나 그가 정치적 생존을 위해 국내경제와 대외정책에서 상당한 변화를 추구할 것이 분명하다.
김일성과 같은 카리스마가 없는 김정일로서는 국민의 생활향상을 도모하고 대남 외교열세를 만회함으로써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최근 북한의 생필품생산을 위한 외국기업과의 합작,대일 관계개선 노력은 김정일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따라서 결정적으로 북한의 고민은 남한에 뒤떨어진 경제를 어떻게 부흥시키고 국민의 불만을 야기하지 않도록 생필품을 생산하느냐에 있다.
북한경제는 40,50년 당시 남한보다는 우월했으나 70,80년대 통일에 초점을 두며 군사력 강화에 힘을 쏟은 나머지 약화되었다.
남한의 경제적 성공은 이제 북한인들도 알게 되었고 그 요구를 충족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북한은 그동안 경제발전을 위해 제한적인 시장 매커니즘이나 생산성 향상 인센티브·이윤제도 등 일부 자본주의 요소를 도입했으나 중앙집권적 경제의 폐단과 보수세력의 반발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김정일은 젊은 관료집단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경제문제 해결자로서 그의 신뢰를 확립하길 원하고 있으나 그가 권력을 이양받을때까지 보수세력으로부터 저항을 받을 것이다.
이같은 갈등속에서도 분명한 것은 북한이 앞으로 경공업발전에 역점을 두고 중국식의 경제모델을 선택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군사적으로 북한은 1백만명이 넘는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고민에 싸여있다.
한국과 미국의 위협때문에 구축한 엄청난 군사력은 북한 경제에 큰 부담이 돼왔다.
북한의 경제발전에 대한 관심과 현재의 대규모 군사력유지가 서로 갈등관계에 있다. 북한은 이것을 어떻게 조정할지 고심하고 있다.
이같은 경제·군사적 요인이 북한으로 하여금 대일 관계개선등 외교적 변화추구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교적으로 북한은 60년대 절정을 이룬 호전성을 바탕으로 제3세계 지도국역할을 추구하며 테러나 쿠데타 등을 지원했으나 최근 이같은 활동을 완화하고 있으며 김정일의 주도로 대남 및 대일·대미 관계개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북한의 정치·군사·경제·외교면에서의 변화추구와 고심은 지금까지 북한의 이념적 바탕이었던 주체사상에 중대한 변화를 시사하는 것이고 이 때문에 일부 변화시도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거나 조정의 갈등을 겪고 있다.
이같은 북한의 변화노력은 제한적 개혁으로 볼 수도 있다. 이같은 변화는 김정일 세습권력의 공고화와 관련되어 있고 김정일이 이를 주도하고 있으나 전통적인 혁명원칙들과 상충하는 부분이 많아 북한은 선택의 교차점에 서있는 것으로 보인다.<뉴욕=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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