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우리 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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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 집 한 채는

쥐들의 밥그릇

바퀴벌레들의 밥그릇

이 방을 관 삼아 누운

오래전 죽은 자의 밥그릇

추억의, 욕창을 앓는 세월의 밥그릇

맵고 짠 눈물 찐득찐득 흘려대던

병든 복숭아나무의 밥그릇

상처들의, 이 집 한 그릇

밥그릇 텅텅 비면 배고플까 봐

그대와 나 밥그릇 속에 눕네

그대에게서 아아 세상에서 제일 좋은

눈물 많은 밥냄새 나네


이 숭고한 무저갱(바닥 없는 구렁텅이)의 밥상 위, 한 채의 밥그릇 속에 누운 그대와 나. 우리 곁에 나란히 누워 있는 쥐들, 바퀴벌레들, 오래전 죽은 자, 욕창을 앓는 세월, 병든 복숭아나무. 상처투성이들이 모락모락 피워내는 눈물 많은 밥냄새, 세상에서 제일 좋은. 한데 숟가락을 입에 문 채 우리들을 빠안히 쳐다보고 있는 다, 당신은 누구?

<정끝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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