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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수련 더 급한 수련의들/조광희 사회부기자·부산(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부산 백병원의 성형외과·치과수련의들이 많은 환자들이 있는 병원내에서 하룻밤사이 세차례나 편싸움등 폭력을 휘두른 것은 흉기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조직폭력배들의 영역다툼이나 다름없을 만큼 볼썽사나웠다. 사회의 존경받는 직업인으로,지성인으로 자부하는 수련의들이 습격·난투극·중상 등의 주인공이 됐다는 것 또한 상식밖의 일이다.
어떤 이익이 따르기에 병원을 찾아온 환자를 가운데 놓고 의사들이 폭력을 행사하면서까지 서로 관할권을 주장하는지 시민들 입장에서는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번 사건이 환자들에게 극진한 의료서비스를 하기 위해 경쟁하다가 빚어진 것이라면 더할나위 없이 고마워해야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병원안에도,밖에도 없는 것 같다.
사건발생 후 1백80여명의 백병원 레지던트·인턴들이 진료까지 거부해가며 병원측에 각 과별로 환자진료 영역문제를 명확히 구분해줄 것을 요구한 것이라든지,수련의 채용을 둘러싸고 수천만원씩의 교제비가 오갔다는 잡음이 전국의 큰 병원들에게 적지않게 일어난 점을 감안하면 백병원사건이 의사사회에서 팽배하고 있는 각종 부조리의 일면을 드러낸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집단 난투극을 벌여 경찰신세를 지게된 수련의들 자신도 『수련기간중 좋은 평점을 따기 위해서는 환자들을 남보다 많이 진료해야 되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환자진료 문제로 각 과의 수련의들간에 암투가 있어왔다』고 실토하고 있다.
병원측의 『젊은 수련의들의 의술경쟁심 때문에 빚어진 단순 폭행사고』라는 해명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인술의 본질이 퇴색되어가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세태라 하더라도 의사들이 눈앞의 이익을 위해 환자가 보는 앞에서 멱살을 잡고 편싸움을 벌이는 추태를 보인 것은 「의사」가 아니라 「단순기능공」의 수준으로 스스로를 끌어내린 「인술상실」이 아니고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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