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독화폐에 왜 그림형제 초상 넣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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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난해 역사적 통일을 이룬 독일인들은 새로운 통합 화폐 중 최고액권인 1천 마르크짜리 지폐에 민족통일의 상징이 될 수 있는 인물의 초상을 새겨 길이길이 민족정신과 조국애를 기리고 싶어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두 남자의 얼굴을 새겼다. 얼굴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동화 작가로 유명한 그림형제였다. 왜 그들은 서구의 역사와 문화를 이끌어온 많은 위대한 조상들을 두고 그림형제를 택했는가.
독문학자인 안삼환교수(서울대)는 월간 『역사산책』최근호에서 이 같은 독일인의 선택을 설명했다. 안 교수에 따르면 독일인의 선택은 가장 정확했으며, 분단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형 야코프 그림과 동생 빌헬름 그림은 독일인의 언어·문화를 하나로 지켜온 독일정신의 상징이다.
이들은 동화·민요·전설을 대대적으로 수집·정리해 『동화 및 가정민담』 『독일전설』등 불멸의 업적을 남겼다. 이어 고대 독문학과 고대관습법 분야로 관심을 옮겨 『독일어문법』 『독일고대법』등 독일학문 발전의 주춧돌을 계속 놓아감으로써 어학·문학·민속학·법학 등 인문과학 여러 분야에 공헌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광범위한 업적을 관류하는 정신인 「조국역사에 대한 사랑」이다. 이들은 독일역사·독일정신의 뿌리를 찾아간 것이었다. 이는 당시 조국 독일이 처한 불행을 헤쳐가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당시는 독일이 나폴레옹에 의해 정복당해 프랑스에 예속되었던 19세기 초. 분산된 조국 앞에서 그림형제는 독일인이 같은 언어·같은 문화를 지닌 한겨레임을 밝히고자한 것이다.
이들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그림사전」으로 불리는 독일어사전의 편찬작업. 이들은 1838년 출판사와 사전편찬을 계약하고 작업에 착수했으나 결국 25년간 F까지밖에 만들지 못했다. 독일인들은 이들 형제의 뜻을 좇아 세계대전과 분단의 격동 속에서도 편찬작업을 계속, 1백33년만인 1971년 서독 괴팅겐과 동독 라이프치히에서 동시에 완간했다. 동서독 분단상황에서도 그림형제의 유업인 사전편찬작업은 계속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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