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자해행위 더이상 없어야(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강경대군의 죽음을 계기로 계속되는 집회와 시위 가운데 두명의 학생들이 저항의 수단으로 자살이란 극단적 방법을 택하려 한데 대해 충격과 함께 커다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잘못된 사회현실에 대한 젊은이들의 저항과 이를 바로잡으려는 열정과 노력을 우리는 이해한다. 젊은 학생들의 그러한 노력과 정열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활력을 잃고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뒷걸음질 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그러한 노력은 삶에 대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가치관에 바탕을 두어야 뜻이 있다.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를 이룩하는데 기여하자면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보다는 계속 참여하여 고쳐나가는 노력이 더욱 소중하다.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바는 현실을 어느 한 쪽의 극단적 시각으로만 보고 절망하는 풍조가 젊은이들 사이에 퍼지는 사태다. 그런 분위기는 자칫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확고한 방향설정을 하지 못한 세대에 모방심리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본다.
이런 가능성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동료 학생들이 도움의 손길을 뻗쳐야 하고 그다음 학부모·교수들이 나서 적극적으로 허무주의적 성향을 바로잡는 노력에 앞장서야 될 것이다.
죽음이 투쟁의 방식으로 등장할 때 투쟁의 의도가 아무리 숭고할지라도 결과적으로 그런 방식을 가져오게 한 분위기와 가치관은 사회의호응을 얻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그런 사태는 운동권 자체의 도덕성에 대한 질책을 몰고 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자면 암담할 때도 있고 좌절할 때도 있다. 특히 청소년시절을 견디기 어려운 긴장속에서 보내온 우리의 젊은이들이 처음 현실사회와 부닥칠 때의 좌절감이 얼마나 크리라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물질이 정신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치가 전도된 사회,경직된 분위기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돼 가는 사회에 대한 우려가 높아가는 가운데 젊은이들의 순수한 이상이 어떠한 상처를 입었는지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한다.
젊은이들이 그러한 좌절감에 빠지게된 책임은 물론 지금까지 이 사회를 이끌어온 기성세대에 있다. 그들에게 희망과 삶에 대한 의지를 심어 주어 학업에 열중하지 못하고 길거리로 나서게 한데 대한 죄책감을 우리는 면할 수 없다.
거리로 나서는 젊은이들의 정열을 나무라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정열이 좀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기를 바랄 뿐이다.
올바른 사회에서 살고 싶은 욕망이 있다면 그러한 힘의 원천을 죽음이라는 좌절의 길로 이끌어서는 안된다.
젊은이들의 이상이 크다면 그만큼 미래사회에 대한 책임과 부담도 크다. 자신의 생명의 존귀함을 자각한 삶이야 말로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젊은이들과 뜻을 같이하며 항의에 나선 각종 사회단체·전민련·전교조·전대협 등이 『학생들이 더이상 죽음으로 항거해서는 안되며 살아서 투쟁할 것』을 호소하며 자제를 촉구한데 대해서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어떻게 죽느냐 보다는 어떻게 사느냐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