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5월(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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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5월의 빛깔은 「씻어 놓은 아기의 얼굴표정」같다는 시인이 있었다.
얼마전에 작고한 정한모 시인은 5월의 향훈과 바람과 색깔은 차라리 「종교」라고 했다.
1년중 5월을 제외한 나머지 달들은 모두 5월을 준비하기 위해 있는 것 같다.
5월의 신록보다 더 아름다운 자연은 만나기 어렵고,5월의 라일락보다 더 환한 꽃구름은 찾기 어렵다.
5월의 찬연한 빛깔을 모르는 사람은 자연의 위대함도 모른다. 죽은듯 메마른 나뭇가지에서 새 잎사귀를 밀어내고,그 무수한 잎사귀 마다에 그처럼 고운색깔로 채색하고,짓눌린 바위틈에서도 새순이 돋아나게 하는 자연의 메시지는 그대로 우리의 삶의 의지요,희망이요,환희의 합창이다.
그런 5월을 두고 시인들은 사랑을 노래했다. 생명에 대한 사랑,좌절로부터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눈을 들어 하늘과 태양을 끌어안을 수 있는 포용과 관용… ,5월은 그런 달이다.
그런 5월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행복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지금 우리는 5월을 그렇게 보내고 있다.
대학 캠퍼스마다엔 분노의 절규와 먼지 바람과 숨을 막는 최루탄의 독취와 어지러운 깃발들이 난무하고 있다. 신록이 눈부신 주변의 자연들이 무색하기만 하다.
길거리를 나서도 여기저기 망을 보고 서있는 전투복차림의 전경들,행인들의 굳어 있는 표정들,어느것 하나를 보아도 5월의 모습이 아니다. 날로 푸르러가는 가로수들 보기가 민망하다.
5월의 정치 또한 무표정하기만 하다. 시국을 논의한다는 여당사람들의 얼굴은 어쩌면 그리 하나같이 생기가 없는가. 야당사람들은 어디 외계에서 온 사람들 모양으로 우리의 걱정,우리의 문제들을 남의말 하듯이 하고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5월은 줄곧 그랬다. 5·16혁명 이후 편안한 5월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5월은 언제나 비상경계의 달이고,술렁거림의 달이며,위기의 달이었다. 5월을 찾아주는 정치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정치일텐데 그런 5월은 여전히 멀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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