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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집시문화의 전기 만들자(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29일 비폭력 연대집회가 준 안도감
명지대생 강경대군 구타치사사건을 규탄하는 「범국민결의대회」가 또다른 큰 불상사없이 끝난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다.
이는 경찰이 이제까지와는 달리 「공격성 진압」을 하지 않았는데도 원인이 있긴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대회 주최측이 현명하게 평화적 시위를 결의했고,참가자들이 이를 잘 따른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참가자가 3만명이나 되는데다가 집회가 밤늦게까지 계속돼 우발적인 군중심리가 작용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더구나 집회도중 전남대여대생의 분신소식이 전해져 분위기도 격앙되었었다. 그런데도 막상 가두진출때는 경찰의 최루탄발사에도 불구하고 화염병이나 돌을 던지지 않는 비폭력시위로 시종했다는 것은 대회가 큰 불상사없이 끝난 것 이상으로 다행스럽고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이다.
범국민대책회의측은 오는 5월4일까지의 추모기간중에는 이러한 비폭력 집회·시위방식을 계속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약속이 충실히 이행되기를 기대하면서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말 모처럼만의 이러한 비폭력적 집회 및 시위가 우리 사회에 평화적인 집시문화를 정착시키는 전기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건 간에 화염병과 돌이 날고 각목과 쇠파이프가 휘둘러지며 젊은이들이 마치 전쟁터에서 마주친 적과 적처럼 서로를 때리고 짓밟는데는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제 지치고 염증이 날대로 나 있다. 언제까지 우리가 이런 폭력과 폭력 충돌의 악순환을 거듭해야 하는가.
그 폭력의 악순환과 상승작용은 어느 쪽인가가 먼저 그 고리를 끊고 나서야 중단될 수 있다. 우리는 물론 원칙적으로는 공권력쪽이 먼저 그것을 결행해야 한다고 보는 쪽이지만 의도가 어디에 있든 기왕 이번에 학생과 재야쪽에서 먼저 그것을 일방적으로 결행한 마당인만큼 반드시 이를 좋은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믿는다.
시위를 하면 으레 화염병과 돌부터 던지고 보는 행위가 합리화되기는 어렵다. 더구나 때로는 파출소나 차량등과 같은 공공건물과 기물을 마구 부수고 불태우는 극단적 과격행위는 동기가 무엇이든 다수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민주화가 학생과 재야의 힘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결국은 국민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 그런만큼 시위도 평화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전개하여 가급적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며 그래야 시위의 본래 목적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원천봉쇄를 능사로 하는 당국의 대처방법도 앞으로는 크게 달라져야 한다. 지난 89년 4월28일자로 새로운 집시법이 발효한 뒤에도 당국은 자의적인 법해석으로 집회·시위를 허가하지 않고 이에 불복하는 집회·시위는 물리력으로 다스려 왔다. 불법집회와 시위에 앞서 불법부당하게 집시를 금지한 경우가 너무도 많았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집시법은 사문화되게 마련이다. 집시의 권한은 국민의 기본권이다. 따라서 당국은 그것을 가능한한 억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용인함으로써 불만의 분출구를 열어줘야 한다.
그런 다음 집회·시위중 불법행동이 빚어진다면 그때는 강경히 대처해도 여론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당국과 학생 및 재야가 좋은 기회를 잘 살려주기를 거듭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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