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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가 찌라시'에 칼 빼든 검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최근 여의도의 한 정보팀이 작성한 A4 용지에 정치권과 재계와 관련한 정보가 빽빽하게 적혀있다. [디지털뉴스센터]

‘찌라시 정보지’가 도마에 올랐다.

증권가를 중심으로 은밀히 생산되는 속칭 ‘찌라시’는 민감한 정치 이슈나 재계 동향, 연예계 내막 등을 담은 사설 정보지다. 주식투자자들을 포함해 정치인이나 기업의 고위 관계자 등이 찌라시를 즐겨 찾는 주 고객이다.

그런데 최근 검찰이 정보지에 ‘사정(司正)의 칼’을 대겠다고 밝혀 주목되고 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지난달 말 “증권가를 중심으로 유포되는 유언비어에 강력 대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 전국 검찰청에 단속지시를 내렸다.

증권가는 거짓이거나 소문 수준에 그치는 정보가 유통되는걸 막아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사정으로 자칫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위축돼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검찰은 ▶특정한 수사사건과 관련한 정치인에 대한 허위사실 ▶특정한 기업·개인에 대한 음해성 유언비어 ▶정부 정책 등 증시·주가에 대한 근거없는 풍설 유포 등을 집중적으로 단속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악성 루머의 진원지로 여겨지는 불법 무등록 정보지와 등록하지 않은 채 사설 투자자문을 하는 행위 등도 단속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한 사설정보팀에서 일하는 관계자는 “정보지에 틀린 내용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고 정보의 신뢰성에 대한 검증작업이 이뤄지면 잘못된 정보는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보지가 일부 극소수를 대상으로 음성적으로 유포될 경우 오히려 허무맹랑한 정보가 양산되고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찌라시 정보지 이렇게 만들어진다

지난 10일 오후 여의도 증권가의 한 카페에서 정보팀 관계자 A씨를 만났다. 그는 “여의도를 중심으로 현재 수십개의 팀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 팀은 보통 6∼10명으로 꾸려진다. 정보팀에 합류하기란 쉽지 않다. 팀원으로 가입한 뒤에도 쓸만한 정보를 꾸준히 가져오는지 검증 절차를 밝게 된다고 한다.

▶ 일부 정보지들은 보안을 위해 파일 내용을 프린터로 출력하면 글자가 뒤섞여 알아보기 힘들도록 만들어 놓았다.[디지털뉴스센터]

A씨는 ‘증권가’라는 말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그는 “큰 돈이 움직이는 여의도에서 과거 증권사의 투자분석팀 직원들이 종목과 관련한 루머 등을 실은 정보지를 돌리면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종목 정보지’는 인터넷 메신저가 보급되면서 서서히 사라졌다고 한다.

현재 유통되는 정보지는 증권·기업 뿐 아니라 정치·관계·언론·연예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정보를 다루고 있다. 정보맨들이 접촉하는 이들도 기업체·검찰·경찰·국정원·증권사 관계자 등을 망라한다고 A씨는 전했다. 이 중에서 삼성그룹에서 나오는 정보가 최고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데도 정보지가 꾸준히 생산·유통되는 이유는 ‘나만의 정보’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 최고경영자(CEO)나 고위 정치인·관료들이 이런 정보에 목말라 한다. A씨는 “정보지를 꾸준히 봐 온 이들은 갑자기 정보지 공급이 끊기면 ‘금단’ 증세까지 보인다”고 말했다.

정보팀이 일할 땐 여의도의 룸싸롱을 많이 이용한다. 대낮에 손님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 은밀한 정보 교환의 장소로 사용한다. A씨는 “노트북을 하나 들고 가서 각자 디스켓에 담아 온 정보를 취합한다”고 말했다. 유통은 노출되기 쉬운 팩스보다는 수요자들에게 직접 배포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한다. 정보지의 가격은 월 수십만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최근 작성된 정보지를 내밀었다.「B.H(청와대) 00씨, 언론사 보도에 민감」,「검찰, 00수사 고민 중」이라는 제목의 글을 포함해 △△그룹 회장의 동향 보고 등 A4지 20여장에 70여개에 이르는 정보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A씨도 정보지의 내용이 전부 사실은 아니라고 인정했다. 확인되지 않거나 루머 수준에 그치는 설익은 정보들도 많다는 것이다. 특히 경쟁자를 음해하기 위해 왜곡된 ‘역(逆)정보’를 의도적으로 시장에 흘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대략 절반 정도는 맞는 내용으로 보면 된다고 정보팀 관계자들은 주장했다. A씨는 “SK의 비자금 부분도 지난해 말 정보지에 등장했으나 다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내용”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보지는 연예 정보가 줄어든게 특징이다. 명예훼손에 휘말릴까 우려해서다. A씨는 “인터넷으로 워낙 다양한 정보가 돌아다녀 정보지의 위력도 예전같지 않다”고 말했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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