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高 편법 '면접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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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2004학년도 신입생 일반전형이 실시된 서울지역 6개 외국어고에는 서울시교육청 장학사들이 이례적으로 총출동했다. 면접을 실시하면서 금지된 지필고사를 보는지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지필고사는 초.중학교 입시과열 문제 때문에 금지돼 있다. 이를 실시하다 걸리면 시교육청으로부터 학교 관계자들이 징계를 받는다.

한 장학사는 "면접자료 같은데 수리 문제들이 들어 있는 걸 보면 지필고사 같기도 하고 구분하기가 모호하다"고 말했다.

높은 진학률 덕분에 외고의 인기가 치솟고 있는 가운데 외국어 우수자를 선발하겠다는 취지의 외고 시험이 금지와 허용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 교육 당국과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지필이냐, 면접이냐=최근 실시된 H외고의 특별전형(성적우수자 전형 등) 면접에서는 수험생들이 면접자료라는 이름의 문제지(11개 문제)를 받았다. 여기에 답안지까지 동시에 받아 풀이와 답을 적어 제출하면 딱 떨어지는 지필고사다.

하지만 이 학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은 종이를 학생들에게 줬다. 문제를 종이에 풀어보게 한 뒤 면접관이 학생을 한명씩 불러 예정된 질문을 하면 학생들은 문제지와 문제 풀이 과정이 있는 종이를 보면서 답을 했다. 이 학교 S교장은 "답안지를 적어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필고사가 아니다"고 해명했다.

다른 외고들도 이날 일반전형에서 유사한 형식의 면접고사를 치렀다. M외고에서 면접을 치른 한 학생도 "언어.수리 등 7개 문제를 풀고 면접에 응했다"며 "풀이과정을 적은 종이는 면접이 끝나자 걷어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만 해도 드러내놓고 지필고사를 치렀던 외고들이 올해는 수법이 정교해졌다"며 "면접 형식을 빌리면서 지필고사 비슷한 테스트를 한다"고 말했다.

◇뭐가 문제인가=원래 외고 면접은 수험생의 외국어 능력을 측정하는 게 주된 목적이다. 하지만 현재는 답안지는 내지 않게 하고 대신 답을 '말로 하는' 언어, 수리 영역 테스트로 변질된 것이다.

외고 관계자들은 "지원자들의 중학교 내신이 비슷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문제가 아니면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영어로 적혀 있는 수학 문제를 풀게 하는 것도 그런 이유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언어.수리 영역 면접고사가 노골적으로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정진곤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외고 면접 문제를 검토해 보니 도저히 중학교 교육과정을 통해서는 풀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며 "결국 학원 다니면서 준비하라는 뜻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모 입시학원은 "한 외고의 출제 문제를 모두 맞혔다"고 주장했다가 "사실과 다르다"며 사과문을 내기도 했다.

강홍준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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