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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지키며 경제 재건" … 북한판 386 전진 배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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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98년부터 경제재건을 위해 개혁.개방과 관련한 몇몇 실험을 단행했다. 2002년에는 성과급과 독립채산제를 핵심으로 하는 경제관리개선조치(7.1조치)를 취했다. 군대를 앞세워 체제 보위에 급급했던 상황에서 벗어나 국가 경영의 정상화를 시도한 것이다. 본지 특별취재팀의 분석 결과 94년부터 12년간 추진됐던 신정책 속에는 파워 그룹의 이동이 맞물린 것으로 나타났다.

<1월 4, 5일자 참조>

◆내각은 변화의 선봉장=90년대에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북한은 '고난의 행군'으로 지칭)를 거친 북한은 '신사고 정책'을 내세우며 변화를 모색했다. 그 중심에는 내각이 섰다. 김 위원장은 98년 홍성남 총리를 기용했다. 개혁적인 정책을 추진하기에 앞서 행정 경험이 풍부한 관료를 기용해 혼란을 줄이려는 포석이었다.

정책 변화의 결정판은 7.1조치였다. 북한 스스로 '개혁'이라고 평가한 7.1조치 이후 '일한 만큼 번다'는 사고가 주민 사이에 확산됐다. 근로자 기본급은 5000원(공식 환율로 따져 한국 돈 3만5000원)이지만 성과급 덕택에 실제 월급이 2만원을 넘는 사례까지 나왔다. 신의주특구 개발 계획과 대규모 토지(농지)정리 사업도 추진됐다. 대외적으로는 국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10여 개 국가와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2003년 들어 변화의 바람은 더 강해졌다. 파워 그룹의 세대교체를 통해 개혁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한 것이다. 내각 총리도 개혁 성향의 박봉주 총리로 바뀌었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국가계획위원장에 김광린 제1부위원장을 승진시켰다. 7.1조치를 물밑에서 주도했던 이들은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2002년 한국.싱가포르를 방문했다.

내각은 간부들을 실력.실리.실적에 따라 평가한다는 이른바 '3실주의 정책'을 폈다. 그 과정에서 '북한판 386세대'들이 전진 배치됐다. 이광근(53) 전 무역상, 권호웅(48) 내각 책임참사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특히 김덕훈(46).김형남(44)은 차관급에 해당하는 특급기업 지배인으로 승진했다. 당 쪽에선 경제정책검열부.농업부를 없애는 대신 내각이 이 분야를 전담토록 했다. 내각이 오랜만에 경제 사령탑 역할을 맡은 것이다. 노동당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미미했으나 과학계의 '젊은 피' 이광호(48) 과학원장을 당 과학교육부장으로 발탁했다. 정보기술( IT)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한 인사였다.

◆체제 수호 때문에 뒤로 밀리는 개방정책=북한은 외국 자본과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84년 합영법 제정, 91년 나진.선봉 경제특구 지정 등 나름의 개방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경제재건보다 체제 수호를 우선하는 김 위원장의 전략 때문에 개방정책은 번번이 뒷걸음질쳤다. 김 위원장은 정권.체제에 무해한 요소만 받아들이겠다는 '모기장식 개방'을 고수하고 있다. 개방정책을 이끌었던 김달현(사망) 부총리는 92년 서울 방문 뒤 "군수용 전력을 민수 산업으로 돌리자"고 건의했다가 1년 만에 낙마했다. 바로 군부의 견제 때문이었다. 3년여간의 공사 끝에 지난해 5월 연결식을 하려던 경의.동해선 철도 역시 군부의 반발에 부닥쳐 무기 연기됐다.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강행 등의 배후에도 군부 강경파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이 추진 중인 경제 정책이 성공하려면 파워그룹의 변화가 필수적 요소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별취재팀=이양수 팀장, 채병건·정용수·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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