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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왜 '美-日 찰떡외교'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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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누가 뭐래도 대미(對美)지원'외교는 호주 존 하워드 총리의 '누가 뭐래도 보안관'외교와 함께 세계 양대 대미 추종외교로 불린다. 이 두 나라의 돌출행동은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9.11테러 이후 미국 주도로 이뤄진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과 재건사업에서 고이즈미는 미국의 강력한 지원자를 자청했다. 크로퍼드 목장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10시간 이상 이야기꽃을 피운 사이. 그 끈끈한 관계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 사이보다 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의 정책 당국자와 지식인들은 종종 "일본이 이렇게까지 미국에 찰떡외교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고이즈미 총리는 선거기간에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을 강력히 주장했다. 아시아 관리들이 일본의 '미국 찰떡외교'에 괴이한 눈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일본의 자위대 파견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일 수도 있다. 아마도 10년 전이라면 이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오늘날 아시아에서는 "미국만 나라냐. 일본은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물론 이들도 미.일동맹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안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테러와 같은 새로운 위협에는 미.일동맹만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중동 민주화 과정에서 미국이 겉으로 드러날 경우 오히려 거부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한 외교관은 "일본은 이슬람국가가 아니다. 또 동쪽(아시아 개발도상국가)도 아니고 완전히 서쪽(미국과 유럽국가)도 아니다. 미국 등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위험부담이 적다"고 말한다. 일본의 독자적인 '민주화'외교를 활발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이즈미 정권이 이렇게까지 대미 협조노선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좌익 이데올로기가 붕괴하고 정부의 친미정책에 대한 저항이 극단적으로 약화됐다. 둘째는 고이즈미 총리가 원래 문화적으로 친미성향을 갖고 있으며 외교이념적으로는 미.일안보 지지자라는 것이다. 총리의 아시아와의 인연은 오히려 짧다. 더군다나 총리 취임 후 맨 처음 겪게 된 외교위기가 바로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한 동북아시아의 비난이었다. 이후 총리는 "중국은 다루기 힘들다"는 심리적 두려움을 갖게 됐다. 여기에 9.11테러가 발생했고 고이즈미 총리의 미국 편향은 박차를 가했다.

셋째, 중국.한국과의 역사문제는 결국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포기심리가 일본 국민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이 일본을 거부한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미국에 의지하려는 심리를 고이즈미 외교는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넷째, 냉전시절 자민당이 국민에게 자신있게 내세웠던 정책은 경제정책(성장확보.경제대국)과 안보정책(미.일 선린관계)이었다. 하지만 경제정책은 1990년대 들어 잇따른 실정으로 낙제점을 받았다. 궁지에 몰린 자민당은 야당과의 차별화를 위해 더욱 더 미.일동맹 중시에 매달리고 있다.

마지막 이유는 걸프전쟁 때 입은 정신적 상처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자위대를 파견할 수 없었다. 1백30억달러라는 거액의 전비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인사는커녕 일본 외교는 '수표외교'라는 야유를 받았다.

'미국 절대지원'외교는 자칫 미.일동맹의 장기적인 생명력을 해칠 우려가 있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고립된다면 미국이 그간 이용해온 일본의 소위 '전략적인 가치'는 소멸하게 될 것이다. 또 미국 내에서 중국 위협론이 고조될 경우 '미.일동맹'은 아시아(특히 중국)와 미국 사이에서 양자택일할 것을 일본에 강요하게 될 것이다. 이는 미.일동맹의 종언을 의미한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미국과 일본은 아시아 지역 평화와 안정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미.일동맹을 십분 활용해야 할 것이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大記者
정리=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