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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평화지향 이미지심기 온힘/한·소정상회담을 보고/이호재 고대교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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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아·태지역 집단안보체제 추진/“북 「단일의석」안 비현실적”확인
이번 제주도에서 열린 한·소정상회담은 1박2일간의 「짧은 것」이었으나 3박4일간에 걸친 일·소정상회담에 이어 상당한 연결성을 갖고 개최되었기 때문에 「짧지 않은」회담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번 일본·한국방문길에서는 구체적인 외교적 결실과 이익을 얻기를 기대한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소련이 단행하고 있는 군축노력을 돋보이게 하고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새로운 평화공존적 질서수립에 노력하는 평화지향적 소련의 이미지를 심는데 더욱 관심이 컸던 것 같다. 간단히 말해 그는 유럽에서 「평화의 붐」「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성공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평화의 사도」가 된 것처럼 이 지역에서도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내일을 기약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국회연설을 통해 그는 동북아지역에서 소련이 최근 이룩한 외교업적인 한·소 국교정상화와 경제협력관계의 큰 전진을 소련이 적대시하던 국가와 맺은 모델로 내세웠다.
이 점을 제주도회담에서 다시 역설했다. 그리고 그의 수행원을 통해 『북한이 극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에 응하지 않을 경우 북한에 대한 핵원료 공급과 기술지원을 중단하겠다』는 사실을 통보했다고 일본에서 밝혔다. 이렇게 소련은 이번에 북한·일본 국교정상화교섭,그리고 남북한 관계에 큰 걸림돌로 예민하게 논의되고 있는 북한의 핵문제 처리에 소련이 기여할 수 있을 가능성을 시위했다.
그리고 북한의 핵과 관련해 소련은 그들이 구상하는 한반도의 비핵화,동북아 또는 아태지역 집단안보체제 등의 구상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 혹은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열성을 보였다.
한국의 유엔가입문제에 있어서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중국도 북한의 남북한 단일의석안을 비현실적이라고 보는 견해를 가졌다는 점을 우리측에 확인해준 것이 수확이다.
아시아­태평양협력체제 문제에 대해서는 아시아­태평양지역문제의 핵심이 한반도문제에 있으므로 이 문제부터 소련의 협력을 얻어 해결한 후에 검토하자는 정도로 넘어갔다. 갑작스런 「회담」에서 그이상 기대하는 것은 정말 무리다.
이번 노·고르바초프 회담 중에 가장 새롭고 우리의 주의를 상기시킬만한 점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장차의 한·소 관계 발전을 법적·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우호협력조약체결」에 대한 구상을 제의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소련이 선린우호협력조약의 구체적 내용을 어떤 것으로 구상하고 있는지가 매우 궁금하다. 소련이 주변국가들과 맺은 선린우호협력조약 내용은 여러가지 형태의 것이 있는데,가끔 소련에 적대시하지 않는 국제적 지위를 가질 것을 규정하기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국제적 중립의 지위 혹은 비동맹같은 것일 수 있다.
아마도 이런 문제는 이번처럼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러 갖는 한·소 정상회담에서가 아니라 장차 있을 정상적인 한·소 정상회담에서 그 구상들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소련이 남북관계에서 기회있을때 중재역을 할 수 있는 지위를 잃는 것은 남북쌍방에 결코 이익이 안된다. 그리고 우리는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양국 각료간에 3차에 걸친 만남에서 형성된 인간적 정과 신뢰,그리고 한·소협조 분위기를 감정을 죽이고 냉정하게 북방외교·남북관계 개선에 활용할 길을 진지하게 찾아야 실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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