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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못해 가는 유학 "10리도 못가 발병 난다"|조기 해외 유학 이대로 좋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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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조기 해외유학은 과연 바람직한가 최근 물의를 빚은 몇몇 유학알선업체의 변칙·사기 극은「조기 영재교육」이 아닌「도피성 해외유학」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줘 충격을 주고 있다. 이같은 중-고교생의 변칙해외 유학은 대부분 극성스런 학부모들의 과잉 교육열과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현시 욕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 이에 따라 해외유학 중-고교생은 현지대학 입학은커녕 언어장벽과 문화충격을 이기지 못해 탈선의 길로 엇나가는 등 오히려 일생을 망치는 경우가 많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현황 및 실태=서울시 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시내 고교재학 및 졸업생 중 국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해외유학을 간 학생은 86년의 경우 27명, 87년 32명, 88년 92명에 불과했으나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이후 급격히 늘어 89년 6백15명, 90년에는6백3명이나 됐다.
또 올 들어서 지난달까지 모두 73명이 유학을 떠나 지금이 학기초인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6백 명 이상이 해외유학을 떠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학생들의 유학대상 국가는 미국이 80%정도로 압도적이나 최근에는 동구권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도 진출하고 있다.
지난달 l6일 중앙교육 평가 원에서 실시한 자비 유학 자격시험 합격자를 보면 ▲영어 2백58 ▲일본어 52▲불어 l5 ▲중국어 12 ▲이탈리아어 3 ▲인도네시아 어 3▲ 스웨덴어 1명의 분포를 보였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합법적인」유학생들이고 관광여권을 이용한 변칙 유학은 미국에만도1만여 명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변칙 유학생은 대부분 성적부진 고교생, 또는 학력고사에 탈락한 고교 졸업생들로 서울 강남「8학군」학생이 주류. 지난 한해 서울시내 고교 자퇴 자를 보면 전체 5백68명 가운데 가정형편이 상대적으로 좋은「8학군」학생이 3백45명으로 6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대부분 해외유학에 나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은 조기해외 유학 붐을 타고 해외유학 알선 업체가 크게 늘어 88년 이전 30여 개소이던 것이 현재는 1백50여 개소가 난립하고 있다.
유학 알선업체는 인·허가가 아닌 세무서 사업자등록 신고만으로 가능, 현황 및 실태파악이 제대로 안되고 있으며 교육청의 지도감독도 받지 않고 있다.
이중에는 탈법 업체도 많아 코리아 아카데미·이화 텍사스 주립 유학 원 등은 모두 2백60여명의 무자격 학생에게「도피성 유학」을 알선해 주고 1인당 1천만원씩 거액을 챙겨 최근 물의를 빚기도 했다.
◇문제점=지난해 9월 미국에서 귀국한 윤 모 군(19)은 현재시내 모 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정신질환치료 및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윤 군은 지난해 초 대학입시에 실패하자 미국에 건너가 모 대학 랭귀 지 스쿨에 등록했으나 어학실력 부족으로 정규대학 입학이 어렵게 되면서 깊은 좌절감에 빠져 마리화나 등 약물을 복용하기 시작, 마약중독자가 된 것이다.
윤 군을 치료한 김현우 박사(한국 정신분석 학 회장)는『유학을 보내 준 부모의 과잉기대가 정신적 압박감으로 작용, 약물을 복용한 것 같다』며『이 경우 사회에 대한 공포증·피해망상증이 대표적으로 나타나 자살충동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윤 군의 경우 수학능력이 부족한 채 무지개 빛 꿈만 안고 유학을 떠났다가 실패한 대표적 케이스.
변칙·조기 유학의 이유는 대체로 ▲어차피 좋은 대학에 가기는 힘들 것 같아 ▲과외비용보다 유학 비용이 싸서 ▲외국어 하나만 잘하면 먹고 살수 있으니까 등으로 파악된다.
여기에 변태 유학 알선업체들이「TOEFL없이도 미국 중·고교 편 입학」「중-고교 외국에서 졸업하면 대입 완전 보장」등 선전을 하며 변칙 유학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허술한 법망을 이용, 관광 비자로 해외에 보내는 편법을 쓰고 있다.
이들은 미국 공립학교에서는 수업료를 받지 않음에도 불구, 수업료 명목으로 1천만∼1천3백 만원을 선불로 받아 가로채기도 하며 현지 브로커와 결탁, 슬럼가나, 산중의 도저히 학교라고 할 수 없는 곳에 보내기도 한다.
미코네티컷 주의 사우스켄트 고교는 한국 학생들이 몰리자 포장도로도 없는 산골 방갈로를 개조, 학교 교사로 쓰고 있으며 도서관·강당은 물론 어학실습에 필수적인 시청각 교재 조차 없이 엉터리 수업을 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이곳에 온 홍 모군(16)은『어학실력 부족보다 6개월 기간의 관광여권 연장 가능 여부가 큰 걱정』이라고 중앙일보 취재기자에게 말했다.
◇대책 및 전문가 의견=서울시 교육청은 최근 정부에 ▲여권 유효기간 제한 ▲여권 발급기준 강화 ▲여권 발급시 학교장 확인서 첨부 의무화 등 보완책을 건의했다.
그러나 교육청 김화원 유학담당 장학사는『학부모가 떼를 쓰면 학교장이 확인 서를 발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제도만으로 불법·변칙 유학을 막을 수 없고 학부모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장학사는 이와 함께『변칙 유학 원들이 세무서 신고만으로 개업이 가능, 행정관청으로부터 아무런 제재·지도감독을 받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 대한 법적 규제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서울 신사동 K유학원 박종태 원장(41)은『유학에 앞서 현지 학교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필요하다』며『특히 언어장벽·문화 충격이 장애물인 만큼 최소한 수학에 필요한 언어능력배양 및 현지 문화·역사에 대한 사전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중앙대 교육학과 이재우 교수는『아동기에는 판단력이 부족하므로 어른의 애정 어린 보살핌이 필요하다. 갑작스러운 문화적 충격은 소외감·애정결핍으로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외국 유학은 학문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스스로 정진해야 할 학문분야를 결정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박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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