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앙일보 특파원들이 만나 본 지구촌 보통 사람의 새해 소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어떤 곳에선 포성이 울렸고, 다른 곳에선 종교가 충돌했다. 핵 개발에 나선 나라도 있었고, 유가 급등으로 목에 힘을 준 국가도 있었다. 지난 한 해 동안 크고 작은 사건 속에서 지구촌 이웃들은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었다. 곧 이라크에 파견될 군인 아들 때문에 잠을 못 이룬 미국인 아버지도 있었고, 축구공 하나에 꿈
을 싣고 뛰었던 아프리카 토고의 연습생도 있었다. 그러나 행복했던 사람도, 절망했던 사람도 2007년 새해에는 새로운 기대를 걸게 마련이다. 중앙일보 특파원 들이 만나본 세계인들은 하나같이 작은 희망을 노래했다. 희망은 그 어떤 무기보다 힘이 세다.

국제부문

#미국-제임스 무언(61.부동산업.메릴랜드주 스태퍼드)

지난해는 우리 가족에게 비교적 평온한 한 해였다. 해병대원인 아들 마이클(27)이 미국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아들은 올해 이라크에 파견된다. 2003년, 2005년에 이어 세 번째다. 6개월간 한 번만 다녀오면 의무는 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은 그 뒤에도 두 번이나 더 파견을 자청했다. 나는 늘 말렸지만 마이클은 "조국을 지키려는 것뿐"이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물론 나는 아들이 자랑스럽다. 그러나 TV만 켜면 나오는 이라크의 참상에 잠 못 이루는 날이 많다. 지난해 결혼한 마이클은 올해 5월이면 아빠가 된다. 곧 태어날 손자를 위해서라도 아들이 이라크에 그만 갔으면 좋겠다. 새해에는 제발 평화가 깃들길 바란다.

#중국-자오궈화(焦國華.25.베이징 한국국제학교 중국어 교사)

3년째 한국인 학생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올해 소망은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의 자원봉사자로 뽑히는 것이다. 다롄(大連) 외국어대학에서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한국선수단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원자가 너무 많아 걱정이다. 베이징에서는 요즘 올림픽에 거는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부도 중국의 발전상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열심히 준비 중이다. 소망이 하나 더 있다면 올해도 제자들이 '겅상이청러우(更上一層樓)'하는 것이다. 당나라 시인 왕지환이 읊은 시의 한 구절로 '비약적인 발전'이란 의미다. 개인적으로는 인생의 좋은 반려자를 만났으면 좋겠다.

#일본-후나하시 기요미(舟橋淸美.34.'포뮬라 레코딩스'실장)

지난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9월 도쿄 부도칸(武道館)에서 열렸던 한국 그룹 '신화'의 콘서트다. 공연이 끝났을 때는 너무 감격해 눈물까지 흘렸다. 내가 한국에 진출했던 일본 배우 유민의 매니저로 일할 때부터 신화는 계속 마음이 끌렸던 그룹이다. '한류'는 이제 내게 단순한 유행이 아닌 생활의 일부다. 일본 국내의 일로는 기코(紀子.일왕의 둘째 며느리)의 득남이 기억에 남는다. 딸만 있는 마사코(雅子.첫째 며느리)의 처지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올해는 아시아를 누비며 역동적인 사업을 하고 싶다.

#러시아-나탈리야 푸쉬나(34.모스크바 시립대 강사)

대학에서 1주일에 한 번 세 시간을 강의하고 한 달에 100달러(약 9만3000원)가량을 받는다. 사업을 하는 남편 덕에 생활엔 문제가 없지만 자존심이 상할 때가 많다. 정식 교수가 되더라도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그들 역시 최소한의 생활 유지도 힘든 200~400달러의 월급을 받는다. 그래서 능력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사업을 한다며 학교를 떠나고 있다. 에너지 수출을 통한 오일 달러가 쌓이면서 러시아도 이제 교육.학문 등 개방 이후 홀대했던 분야에 투자할 여유가 생겼다. 2007년엔 과감한 정부 지원으로 무너진 교육이 활기를 찾길 기대한다. 이와 함께 지난해 다행히 발생하지 않은 대형 테러가 올해도 없기를 바란다.

#프랑스-피에르 그리아루(31.사회과학고등연구원 박사과정)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2006년은 격변의 한 해였다. 정부는 기업이 26세 미만의 직원을 채용했을 경우 첫 2년 동안은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한 '최초고용계약(CPE)' 제도를 도입했다. 많은 학생과 노동자들이 이에 반발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놀란 정부는 결국 굴복했다. 나는 정부에 분노한 사람들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더 이상 시위에 참가하지는 않는다. 이보다는 올해 훌륭한 박사 논문을 쓰는 것이 내게 더 중요하다. 그래서 대학이나 연구소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고 싶다. 프랑스에서는 올 상반기에 대선과 총선이 치러진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 뽑혔으면 좋겠다.

#이라크-우마르 압둘마지드(35.이라키야 방송 카이로 특파원)

올해는 내 고향 바그다드에 가고 싶다. 전쟁 직전 이라크를 빠져나왔으니 집 떠난 지 벌써 4년이 다 되어 간다. 연말이 되니 타향살이의 설움이 더 커진다. 이라크의 부모님은 다행히 무사하시지만 영영 만날 수 없게 된 친지.친구가 벌써 여러 명이다. 부모님은 고국 상황이 너무 불안하니 절대 돌아오지 말라고 하신다. 가볼 수 없다면 고향에서 전해지는 안타까운 소식이라도 좀 줄었으면 좋겠다. 올해는 이라크의 분쟁이 끝나고 미군도 철수하는 해가 되길 매일 기도한다. 그러면 바그다드 대학에 돌아가 중도 포기한 박사 학위를 마치고 싶다. 출세나 큰돈은 필요 없다. 부모님 곁에서 결혼도 하고, 손자도 안겨 드리는 것이 나의 꿈이다.

#인도네시아-카니르 로니(35.가정부.홍콩 거주)

스무 살에 자카르타를 떠나 홍콩에 왔으니 벌써 15년이 넘었다. 막노동하는 남편 수입으론 입에 풀칠도 어려워 두 아이의 장래를 생각해 내린 결정이었다. 가정부 월급 절반을 꼬박꼬박 집에 보냈지만 남편은 몇 년 전 일방적으로 이혼을 선언했다. 분하고 서러웠다. 그러나 어려운 처지의 고국 후배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들 중엔 접시 하나를 깼다고 두 시간 동안 무릎 꿇고 벌을 선 18세 소녀도 있었다. 올해는 인도네시아 대통령에게 홍콩 방문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려 한다. 우리가 외국에서 얼마나 힘겹게 사는지 직접 보면 정치를 잘해 잘사는 나라를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토고-아코토 쿠아미(23.토고 델타축구아카데미 훈련생)

지난해 토고는 독일 월드컵에 진출한 대표팀 때문에 온 나라가 들썩들썩했다. 우리 아카데미 훈련생 중에도 빚을 얻어 독일에 간 친구가 여럿 있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연습에 집중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축구를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두 배 이상 노력해야 한다. 언젠가는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에마뉘엘 아데바요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뛸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올해 토고의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축구는 나의 삶이자 희망이다.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선 반드시 유럽에 가야 한다. 고생하는 부모.형제를 위해서라도 가야만 한다.


그래픽 크게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