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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도요타의 처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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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본 아이치(愛知)현의 소도시 도요타(豊田)의 도요타자동차 본사를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적이 놀란다. 칠이 벗겨진 캐비닛, 구형 데스크톱이 듬성듬성 놓인 사무실 풍경은 볼품없다. 구형 다이얼 전화기가 놓인 걸 보곤 '세계 최고기업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한다.

도요타 최고 경영진들이 이따금 던지는'빈티'나는 언사도 사옥의 초라한 행색과 무척 닮았다. 1995년 회장에 올라 도요타를 위기에서 건진 전문 경영인 오쿠다 히로시(奧田碩)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해 6월 회장 직에서 물러나기 직전 "일본이 자동차 분야에서 독자 발명한 건 사이드 미러를 접는 장치뿐"이라는 말을 해 주변을 아연케 했다.

2000년 이후 매년 10조원 이상의 경상이익 행진을 이어 온 비결을 묻자 이렇게 썰렁한 동문서답으로 응수했다.

후임인 조 후지오(張富士夫) 회장에게 매스컴이 붙인 별명은 '블랙홀'이었다. 그 역시 사장 때인 2004년 미국 타임지가 '영향력 있는 세계 100대 인물'에 포함시킨 거물. 하지만 "GM을 언제 꺾나" 같은 공격적 질문에 "고객 덕분""열심히 하겠다"식의 맥빠진 답변으로 일관해 기사 욕심 많은 기자들한테 인기가 없었다. (김태진 등, '일본의 10년 불황을 이겨낸 힘 도요타') 일본 사람들은 자화자찬을 삼가는 편이다. 고전하는 미 자동차 업계를 자극해 득 될 리도 없다. 하지만 도요타의 겸양과 조심성은 지나쳐 엄살로 비치기까지 한다.

그런 도요타가 또다시 바짝 엎드렸다. 올해 도요타의 판매(934만 대 목표)가 처음 미 GM을 추월할 것이 확실시되자 와타나베 가쓰아키(渡邊捷昭) 사장은 연말 기자회견에서 "(1등은) 가이젠(改善) 활동을 열심히 한…결과일 뿐 결코 목표는 아니었다"고 쩔쩔맸다. 마치 100년 자동차 종주국의 아성을 허물게 된 게 미안해 변명이나 하듯이.

오쿠다 전 회장은 회사가 잘나갈 때마다 "최대의 경쟁자는 도요타 자신"이라고 안주하려는 임직원들을 안에서 일깨웠다. 밖으론 스스로를 한껏 낮추는 겸양의 철학을 조직의 유전자에 심으려고 애썼다.

올해도 탁월한 실적을 기대하는 우리 글로벌 기업들이 적잖다. 이들이 혹시라도 자만에 빠지면 힘겨운 우리 경제는 더 큰 어려움에 빠진다. 이럴 때 초일류기업 도요타의 처신, 아울러 "좋은(good) 것은 위대한(great) 것의 적'(짐 콜린스,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이라는 경구를 새겨두면 어떨까.

홍승일 경제부문 차장